헌재 “도서정가제 ‘합헌’…‘문화적 다양성 제공”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헌법소원 심판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자책에도 종이책과 동일한 할인률을 적용하도록 규정한 도서정가제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20일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 제4항과 제5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간행물은 원칙적으로 정가대로 판매하되, 가격 할인과 경제상 이익(마일리지 적립 등)의 총합이 정가의 15%를 넘길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3년 도입된 도서정가제는 2014년 개정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웹소설 작가이자 전자책 플랫폼·출판사를 운영 중인 ㄱ씨는 “도서정가제로 인해 가격할인 등으로 마케팅 수요에 대처할 기회를 차단당하는 등 기본권(직업의 자유)이 침해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지나친 가격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 질서의 혼란을 방지함으로써 저자와 출판사를 안정적으로 보호·육성하고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의 간행물을 제공함으로써 출판문화산업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이 법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지역 서점 매장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이는 인터넷의 발달과 같은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로 인한 결과로 볼 여지가 있다”며 “단기적 및 가격 책정 측면에서는 직업의 자유가 축소되는 면이 있으나 장기적 및 시장 전체의 측면으로는 직업의 자유를 보장·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ㄱ씨는 “전자책 플랫폼을 통해 연재하는 방식은 실질적으로는 도서의 판매가 아닌 영구 대여”라며 “도서정가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전자출판물만 도서정가제 적용을 배제하면 종이출판물 대신 가격이 저렴한 전자출판물을 구매하게 돼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전자출판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독자층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종이출판산업이 쇠퇴하게 되면 독자의 도서접근권에 부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2002년 도서정가제 제정 때는 종이출판물만 대상으로 했으나 2016년 법을 개정해 전자출판물로도 대상을 넓힌 독일의 사례도 언급했다.

헌재 관계자는 “도서정가제를 정한 출판법 규정이 판매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판단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헌법소원은 2010년 8개 출판·서점 단체에 의해 제기된 적이 있지만, 청구인 자격 미달로 제대로 된 헌재의 판단을 받지 못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