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겨냥 이라크 은행 14곳 제재…핵합의 복원 난항 증거?
핵합의 위해 최근 이란에 유화 정책
WSJ “불과 몇 달 만에 새로운 제재”
이라크 경제 붕괴·IS 재출현 등 우려
미국 정부가 19일(현지시간) 이란에 달러를 몰래 전달하고 있다는 의혹에 휩싸인 이라크 은행 14곳을 제재했다. 미국과 이란의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아르빌 은행 등 이라크 은행 14곳에 대해 달러 거래 금지 조치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미 당국은 이들 은행이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를 받는 이란과 기타 중동 국가에 불법으로 달러를 빼돌린 증거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WSJ에 “이라크 은행들이 자금 세탁과 사기 거래에 관여했다는 정보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제재 명단에 오른 이라크 은행들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이다. WSJ에 따르면 14개 은행 총자산은 이라크 전체 은행 자산의 1.29%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달러 거래 금지령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라크 은행이 46곳에 이른다”며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이번 조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이란 핵합의 복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WSJ은 “미 정부는 테헤란(이란 수도)과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왔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이란에 대한 새로운 제재가 집행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지난달 이라크에 묶인 이란 자금 27억6000만달러(약 3조5000억원) 동결 해제를 허가했다. 이 자금은 이라크가 이란으로부터 가스와 전기를 구매했지만, 미국 제재로 이란에 지급하지 못한 판매 대금이었다.
당시 미 CNN 등 외신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이라크 고위 관리들을 직접 만나 합의한 사항으로, 이란 핵합의 복원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평가했다.
현지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핵합의를 위한 미국과 이란의 ‘핫라인’은 여전히 존재한다”면서도 “핵합의를 원하는 미국의 일부 정책은 양측의 긴장감을 높이는 모순적인 성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17일 미 국방부가 호르무즈 해협과 오만만에 F-35 전투기와 구축함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사례를 언급했다.
이라크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달러는 이라크의 두 번째 공식 통화로 자리 잡았다. 석유 판매 수익금도 달러로 예치한다. WSJ은 “이라크 내 예금자가 거의 없고, 대부분 이익을 달러 거래에 의존하는 이라크 은행엔 사형 선고와 같은 조처”라고 평가했다. 수입품 가격 급등과 이라크 화폐(디나르) 가치 하락도 우려된다.
더 나아가 일부 전문가들은 이라크의 달러 접근을 완전히 차단하면 극심한 경제 혼란으로 이슬람국가(IS) 재출현 등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WSJ은 “미국 관리들은 이라크가 이란으로 보내는 달러 상당수가 IS로 흘러간다고 믿었다”면서 “하지만 돈줄을 지나치게 죄면 IS 퇴치라는 목표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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