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시선으로 ‘문화도시’의 싹을 틔우다
[서울&]
문화의 힘은 대단하다. 외국에서 케이팝(K-POP) 가수의 공연이 매진되고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에 한국 드라마가 오르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백범 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K-컬처’가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가는 요즘에는 더욱 와닿는 말이다.
지역이 발전하기 위해서도 문화의 힘이 필요하다. 동대문구는 문화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구도심인 동대문구는 북적이던 그 시절만큼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또 관내 3개 대학이 자리 잡고 있어 청년들이 활발하게 오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 지역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 특색 있는 문화 콘텐츠로 제작하면 어떨까?’ ‘사람, 공간, 역사 등 동대문구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트렌드에 민감한 청년들이 풀어낸다면 멋지지 않을까?’ 이런 질문 끝에 탄생한 프로젝트가 바로 ‘횡단보도 불이 바뀌기 3초 전’이다. ‘청년이 만드는 동대문구의 새로운 문화’, 파란불이 켜지듯 긴 고민의 답을 찾은 것 같았다.
기획자 3명과 청년 9명이 함께 만드는 도시문화 프로젝트인 2023 문화창작실습 ‘횡단보도 불이 바뀌기 3초 전’이 최근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다. 참여자들은 지역의 역사적 의미와 이야기, 장소, 사람 등을 타설 과정을 거쳐 ‘전시’라는 새로운 건축물로 만들어낸다는 의미를 담은 ‘타설공’ 팀, 최초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예술가이자 멸종한 신인류라는 의미를 지닌 네안데르탈인에서 유래한 ‘네안데르’ 팀, 다양한 의미의 음절 ‘동’과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는 의미의 ‘시간’을 결합한 ‘동시간’ 팀까지 세 팀을 꾸려 각자 팀명에 맞는 재기발랄한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각 팀은 다양한 의미를 담은 전시를 개최하고 천장산과 배봉산을 오르는 등 동대문구의 색을 담은 신선한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완성해냈다. 동대문구와 청년들이 함께한 새로운 시도 모두 의미 있고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청량리동에는 1950년대 중반 한국전쟁 뒤 생긴 심각한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서울시가 조성한 공영주택인 청량리 홍릉주택이 있다. 1950년대의 대표적 단지형 주거인 청량리 홍릉주택은 서울 도심에 얼마 남지 않은 근대 건축물이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타설공’ 팀은 재개발사업구역에 속해 곧 대단지 아파트로 바뀌는 청량리 홍릉주택의 보전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서울/동대문구] 데이터 선별자 모집합니다’라는 참여형 전시로 풀어냈다. 동대문구 내 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재개발 뒤로 사라지는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해 또다시 생각했다. 지속 가능한 보존 방법을 고민하는 청년들을 보며 신속한 ‘개발’에만 너무 몰두한 게 아닌지, 우리 지역에서 꼭 남겨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사유했다.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타설공’ 팀이 지역의 미래에서 중요한 점을 끄집어냈듯이 이 역시 주민들과 함께 풀어내야 할 숙제 중 하나임을 마음 깊이 되새겼다. 청년의 눈으로 본 동대문구는 내가 봐온 동대문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오래되고 익숙한 이야기가 새롭게 탄생하는 과정을 통해 동대문구의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냈다.
예술가에게 활동 기회를, 지역 소상공인에게는 홍보 기회를, 지역 주민에게는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인 ‘네안데르’ 팀의 ‘동대문구에 동화하다’ 프로젝트에서는 문화콘텐츠와 지역 소상공인이 함께 부흥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미 존재하던 공간과 이야기를 하나의 콘텐츠로 만들어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고무적인 느낌을 받았다. 이런 프로젝트들을 더욱 개선하고 확대해 나간다면 ‘동대문구’ 하면 생각나는 특별한 지역 문화로도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
동대문구는 구도심이 아닌 청년이 머무는 젊은 도시이자 문화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동대문구만의 색으로 촘촘히 짜인 ‘문화’가 주민과 지역 사이의 이음줄이 될 수 있도록 청년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본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해 나가겠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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