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연필 대신 아이패드로...日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는 중증 장애인
양손으로 ‘아이패드미니’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써
중증 장애인 성적 차별과 권리에 대해 파고들어
책상에 앉아 글을 쓸 수 없는 중증 장애인 소설가가 19일 일본 순수문학 최고 귄위인 ‘아쿠타가와상(芥川龍之介賞)’을 수상했다. 아쿠타가와상 선정위원회는 19일 자전적 소설인 ‘헌치백’(곱사등이)을 쓴 이치카와 사오(市川沙央·44)를 169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열 살쯤부터 선천성 근육병증을 앓아 등뼈가 휘고 열네 살 때부터 인공호흡기를 써온 여성 소설가다.
이치카와는 등뼈에 부담이 안 가도록, 누운 상태로 태블릿PC인 ‘아이패드 미니’를 게임기처럼 양손으로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소설을 쓴다. ‘헌치백’은 작가와 비슷하게 등뼈가 S자로 휘어진 중증 장애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도쿄의 고급 식당에서 열린 수상자 발표회에 전동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이치카와는 “중증 장애인 작가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이 처음이라는데 왜 2023년에서야 처음인지, 다들 한번 생각해 봐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상 소식은 일곱 살 많은 언니에게 가장 먼저 (스마트폰 메신저) 라인으로 알렸다”며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언니는 중학생 때 쓰러져서 지금까지 누운 채로 생활하지만 매우 건강한 삶을 산다”고 말했다.
수상작 ‘헌치백’은 중증 장애인이지만 부모가 남긴 유산으로 유복하게 사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인터넷에 성(性) 풍속 기사를 쓰면서 번 돈은 불우한 아이들에게 기부한다. 한편으론 익명의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며 ‘임신해서 낙태를 해보고 싶다’는 왜곡된 욕망을 올리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성적 경험이 없는 여주인공이 신체는 멀쩡하지만 수입이 별로 없는 남성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이 줄거리를 이룬다. 중증 장애인 여성에 대한 성적인 차별과 그들의 성에 대한 권리를 파고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치카와는 “(장애인)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다뤘고 제 경험은 30% 정도 담았다”고 했다.
1979년 도쿄 인근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이치카와는 중증 장애 탓에 취업을 못 하자 스무 살 무렵부터 ‘나를 구해낼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판타지를 주요 주제로 삼는 라이트노벨(청소년 대상 대중 소설) 집필이었다. 20여 년간 라이트노벨을 써온 이치카와가 순수문학에 도전해 처음 낸 작품이 ‘헌치백’이다.
그는 “호소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 작년 여름 처음으로 순수문학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해 와세다대학의 통신교육과정을 다닌 이치카와가 졸업 논문을 쓰던 중 장애인 차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며 터진 분노를 소설에다 쏟아냈다”고 전했다.
이치카와는 발표회에서 전자책에 비해 장애인에겐 접근성이 떨어지는 종이 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본 출판계를 비판했다. 소설에 “나는 종이책을 미워했다. 다섯 가지의 건강 항목을 충족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독서 문화를 증오한다”고 썼다. 눈으로 읽고, 책을 들고, 책장을 넘기고, 읽는 자세를 유지하고, 서점에 가서 책을 사야 한다는 종이책의 독서 과정이 장애인에게는 큰 벽이라는 것이다.
장애인 여성과 사회라는 쉽지 않은 담론을 책에 담았지만, 이치카와는 이날 발표회를 유머를 섞어 이끌어갔다. ‘종이책’을 비판하면서 “종이책을 내지 않으면 상업 작가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풍조가 있어 20여 년간 문학상에서 떨어지기만 했다”며 “’평생 종이책이 나오지 않은 여자’라고 묘비에 새기려 했는데 (‘헌치백’ 출간으로) 이 계획은 좌절됐다”고 했다. 라이트노벨을 쓰다가 순수문학 작품을 쓴 계기에 대해선 “제가 제일 자신 있던 판타지 소설마저 지난해 문학상에서 낙마했다. 이젠 판타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이치카와는 발표회에서 자신의 종이책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소감을 묻는 질문엔 “(촬영 시간이) 좀 길어서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고 말했다. 주황 원피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선 “(주황색 그림이 있는) 표지와 어울리는 것 같아서 골랐는데,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아쿠타가와상은 1935년 일본 천재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1927)를 기리며 제정된 상이다. 한 해 두 차례 수상자를 선정한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류, 이시하라 신타로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일본 최고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각각 두 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