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아니기에 퇴직금도 호봉도 없습니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택배 현장에는 사장이 세 명 있습니다. 진짜 사장인 택배사, 계약서상의 사장인 대리점, 그리고 무늬만 사장인 택배노동자... 택배 현장에는 노동자는 없고 사장만 잔뜩 있습니다."
노동자이지만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하청·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이 국회를 찾아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사용자와 노동자의 정의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등의 노조법 2·3조 통과를 촉구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20일 국회 본청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전히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마저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특고(특수고용노동자)는 법의 바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법의 사각지대를 투쟁으로 메우며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왔다"며 "장시간 노동,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 불공정계약, 공짜노동, 감정노동, 야간노동, 과로사 등의 단어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수식어나 다름없다"고 한탄했다.
'특고'는 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위탁계약에 의해 노동을 하고 수수료와 같은 대가를 받는 노동자를 일컫는다. 겉으로는 독립 사업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특정 업체에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직·간접적 업무 지시와 감독을 받아 직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다. 콜센터 상담원, 학습지교사, 방과후강사, 가전제품 방문점검원, 마트온라인배송기사, 대리운전기사, 택배기사, 배달라이더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유성욱 전국택배노동조합 CJ대한통운본부 본부장은 현장 증언을 통해 "택배사 로고를 차량에 도색하며, 택배사 로고가 부착된 작업복과 조끼를 입고 일한다. 즉,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에 의해 생활하는 '근로자'"라며 "그러나 계약서는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수탁 계약서'이고, 받는 대가가 급료나 임금이 아닌 '수수료'라는 이유로, 택배사들과 정부는 우리가 '근로자'가 아니라고 한다"고 했다.
유 본부장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퇴직금도, 호봉도 없다"며 "노조법 2·3조가 개정된다면, 앞으로 택배사 원청은 파업 초기부터 노조와 협상을 하게 될 것이며, 정상적 택배현장 운영을 위해 노동자들과 대화를 하게 될 것"이라고 노조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간접고용, 하청노동자에겐 실제로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과의 교섭이 보장되지 않는다"며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들은 임금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 노동시간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과 교섭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원청의 책임 회피에 투쟁으로 교섭을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강정구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 로레알코리아지부 법규국장은 "통상 백화점 노동자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초대형 백화점일 경우 3000~4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고 있지만 백화점 소속의 정규직은 5% 내외이다. 나머지 95%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은 근무지만 백화점일 뿐, 파견·도급·파트너·협력업체 직원이란 이름으로 백화점에 간접고용되어 있다"며 "하지만 백화점과 백화점 관리자들은 수많은 노동자에게 사용자의 권한이 없음에도 권한을 행사하고 있고, 남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국장은 "백화점 관리자들이 근무 조정뿐만 아니라 인사 권한까지 행사한다"며 "백화점이 간접고용되어 있는 노동자에게 이 같은 제한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조법 2·3조를 개정하여 백화점 원청이 직접 교섭에 나와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자들은 한 목소리로 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특수고용, 간접고용,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삶을 바꾸기 위해, 민주적 노사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즉각 처리하라"며 "노조법 개정을 반대하는 정치세력은, 내년 총선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우고 있다. 노조법 2조 개정안은 간접고용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까지 노조법 보호 대상에 포함하자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노조법 3조 개정안은 노조 탄압 수단으로 악용되는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 일부를 제한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30일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이 불법파업을 조장해 나라 경제를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본회의 직회부와 부의를 반대해왔다. 이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도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측되는 윤석열 대통령을 겨냥해서는 "여당과 윤석열 대통령은 노조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예고에 경고한다"며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적 공권력을 행사한다면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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