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버스로 국회 한 바퀴…“핸들이 ‘안전 향해’ 스스로 움직여”
운영 앱으로 시민 누구나 무료 이용…평일 10~16시 운행
[서울&] [커버스토리] 서울시, 10월엔 ‘세계 최초 심야 자율주행 버스’ 운행 계획
핸들 돌리고, 깜빡이 넣고 혼자 ‘척척’
비상 상황 대비해 안전요원 함께 탑승
일부 위험 구간에선 안전상 수동 운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에 특이한 승합차 한 대가 나타났다. 흰색 배경에 파란색 무늬, 전면 보닛과 좌우 창문에 ‘자율주행 로보셔틀’이라는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는 이 차량. 서울시가 국회, 현대자동차와 함께 지난 5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무료 자율주행 승합버스다.
시에 따르면 이 버스는 △상암 △강남 △청계천 △청와대에 이어 시에서 5번째로 운행되는 자율차로, 국회 방문객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마련됐다. 현대차에서 쏠라티 차량을 개조해 개발한 13인승 소형버스이며,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총 2대가 국회 주변 3.1㎞를 순환 운행한다. 기자는 여의도 자율차 정기 운행이 시작된 지 일주일째인 지난 12일 해당 버스를 타고 국회 일대를 돌아봤다.
이날 오전 11시께 국회 정문 앞 로보셔틀 정류장에 도착한 기자는 근처 팻말부터 살펴봤다. 의원회관, 도서관, 본관 등 6개 정류장이 표시된 지도 밑에 ‘자율주행 전용 앱(TAP!)을 설치하고 호출해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앱에서 출발지와 도착지를 설정하면 배차가 이뤄지는 시스템으로, 탑승 가능한 차량과 예상 승하차 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만 6살 이상부터 탈 수 있고 음료와 음식물 반입은 금지하며 반려동물은 이동용 캐리어에 넣어달라는 안내 메시지도 떴다. 한 바퀴 체험을 선택해 호출을 완료하니 승차권과 함께 2분 안에 도착한다는 알림이 왔다.
잠시 후 멀리서부터 눈에 띄는 소형버스 한 대가 정류장에 멈춰 섰다. 차량에 다가서자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버스 운전석에는 돌발 상황을 대비해 ‘안전요원 겸 시범운전자’가 탑승해 있었다.
버스에 올라 지정된 좌석에 앉자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세요” 하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창밖으로 버스를 가리키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자율주행 출발하겠습니다” 하는 운전자의 외침과 함께 운행이 시작됐다.
출발하자마자 만난 커브 구간에서 차량은 매끄럽게 방향을 틀었다. 운전대가 잘 안 보이는 뒷자리에서는 수동 운전인지 자율주행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안내 전광판에는 다음 정류장 알림과 함께 ‘자율주행 중’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전광판을 보면서 주행 상황을 가늠하다가 앞쪽 자리로 옮겨 운전석을 지켜봤다. 운전자가 손을 떼고 있어도 운전대 스스로 움직이며 방향을 바꾸는 모습이 신기했다.
차량은 주행 내내 스스로 방향지시등을 켜 차로를 변경하고 전방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있으면 서서히 속도를 줄여 정차했다. 주행 도로에 보행자가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는 경고음이 울리며 차가 급정거하기도 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이 차량에는 레벨4 수준의 기술이 적용됐다. 레벨4는 차가 스스로 주행 상황을 인지·판단·제어하는 비상 제어가 필요한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운전자 개입 없이 완전자율주행이 가능한 단계를 말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날 <서울&>과의 전화 통화에서 현대차는 자율주행 센서의 개별 기능 외에도 “로보셔틀에 ‘센서퓨전’ 기술 또한 적용해 안전성과 정확성을 높인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센서퓨전은 완전자율주행 구현에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카메라·레이더·라이다 등 개별 센서에서 획득한 데이터를 통합해 각 센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적극 활용해 주변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기술이다. 기자가 교통신호 감지 방식에 관해 묻자 “경찰청·서울시와 협업해 자율주행 구간 내 신호등과 V2X 통신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차량이 신호등과 연동돼 있어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 악조건에서도 신호 정보가 통신으로 차량에 전달되므로 더욱 정확한 주행이 가능하다”고 했다.
국회 어린이집 근방을 지날 때는 “현행법상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수동 운전으로 전환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서 사람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3문과 6문 출입 차단기를 통과할 때와 둔치 주차장에서 차를 돌려나올 때도 차량이 수동으로 운행됐다. 주차장은 이중 주차된 차가 많고 매일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직접 개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의 세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율주행이 기본이지만, 예상치 못한 장애물 등 일부 위험 상황에는 운전자가 수동으로 대응하는 모습이었다.
주행 도중 새로운 호출이 들어오자 “새로운 정류장을 경유합니다”라는 문구가 전광판에 떴다. 버스는 계속 순환 운행하다가 호출이 뜨면 해당 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우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호출한 승객은 3분 내로 탑승해야 한다.
코스는 △여의도 한강둔치주차장 △의원회관 △국회 정문(1문) △도서관 △본관(면회실) △소통관 총 6개 정류장을 지난다. 이날 기자가 탄 버스가 국회 경내·외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시간은 약 16분. 한 정류장을 거칠 때마다 2~3분가량 소요됐다. 버스는 상황에 맞게 감속하며 시속 30㎞ 이내로 운행했다.
국회에서 근무하는 유아무개씨는 “오늘 (버스를) 처음 봤다. 보통 둔치주차장에 주차하니까 오가는 데 필요한 분이 더 계실 듯하다”며 “정류장에 타임테이블을 만들어서 운영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함께 있던 강아무개씨도 공감하며 “내일 한번 타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팀원들과 함께 버스를 이용해본 신승민(31)씨는 “‘자율주행차’ 하면 일반 승용차를 떠올리게 되는데, 이 버스는 차체가 커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어 좋았다. 의외로 승차감도 굉장히 편안했다”며 “다만 안전을 중시하다보니 속도가 좀 느리다. 또 앱에서 각자 신청해야 한다거나 코스가 잘 정립돼 있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현재는 승객 모두 앱을 설치해 직접 예약해야만 버스 이용이 가능하다. 신씨와 동행한 팀원이 “한 명이 신청할 때 여러 자리 신청할 수 없느냐”고 묻자 운전자는 “현재로서는 그렇게 안 된다. 많이 불편해하셔서 추후에 그런 방식도 도입해보려 한다”고 답했다.
최대 탑승 가능 인원은 로보셔틀 한 대당 10명씩, 총 20명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회 론칭 뒤 “하루 평균 40~50명 탑승하고 있다”며 “이용률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탑승객이 가장 많은 시간대는 점심시간 이후라고 한다. 실제로 낮 12시를 넘어가자 국회 경내 도로에 사람이 많아졌는데, 갑자기 도로에 등장한 보행자와 차들을 인식해 안전하게 정차한 뒤 통과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회 경내는 도로 형태가 일반 공도와 상이하므로 자율주행이 쉽지 않은 환경”이라면서도 “저희는 항상 안전에 제일 신경을 쓰고, 시험 운전자들과도 그 점을 가장 최우선으로 이야기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국회 자율주행 순환버스 운행 결과를 토대로 향후 운행 지역을 여의도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여의도역, 여의도 환승센터, 오피스 밀집 지역 등 일대 지하철역과 주요 거점을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오는 10월에는 세계 최초로 심야 자율주행 버스를 운행할 계획이다. 현재 대학가, 대형 쇼핑몰 등이 포함돼 야간 이동 수요가 많은 합정역부터 흥인지문까지 9.7㎞를 달리는 자율주행 버스를 추진 중에 있다. 서울시 도시교통실 미래첨단교통과 최종선 자율주행팀장은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서비스가 이뤄져야 하는데, (현 사업은) 이런 실증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선·보완하고 촉진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시민들이 자율주행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역에서 운행을 계획하고 있다.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화랑 객원기자 hwarang_lee@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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