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인간세상에 잠시 내어준 천재..미켈란젤로는 와인 마니아였다
광기와 집념으로 똘똘 뭉친 인류 최고의 예술가
다비드, 피에타 등 20대부터 인류 걸작 탄생시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살아움직이는 입체감 압권
[파이낸셜뉴스]
#1."일이 이렇게 늦어지고 있는 것은 이 일이 어렵고 내 본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이여, 도와주소서!"
1509년 어느 날, 기도를 마치고 나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피에타(Pieta)', '다비드(David)'라는 인류 최고 조각 작품을 탄생시키며 젊은시절부터 '신이 내린 젊은 거장'으로 이름이 높았지만 이제 그를 막아세운 건 가로 13.2m, 세로 41.2m에 달하는 거대한 프레스코화였다. 욕심과 변덕으로 유명한 교황 율리우스 2세(Julius Ⅱ)의 협박에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을 맡았지만 미켈란젤로는 1년 가까이 단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상태였다.
"조각가인 나에게 그림을 그리라니." 미켈란젤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부아가 치밀어올랐습니다. 늘 그랬듯이 천재 주변에는 시기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은 도나토 브라만테라는 예술가가 미켈란젤로를 일부러 고난으로 밀어넣은 것이었습니다. 율리우스 2세는 불과 1년전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게 자신의 영묘를 조각해달라"며 작업을 발주해놓고는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을 찾기 위해 로마를 떠난 사이 마음이 변했습니다. 교황은 영묘 조각 작업을 중단시키고 돌연 그의 삼촌이자 전 교황인 식스투스 4세가 지은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재단장하는 작업을 맡겼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평면도 아닌 둥근 궁륭 구조의 천장에 테니스 코트(가로 8m, 세로 23m) 두 배에 달하는 크기였습니다. 게다가 프레스코화였습니다. 프레스코화는 벽에 회반죽을 얇게 펴 바른 후 마르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반죽이 마르면서 안료를 빨아들여 색이 거의 영구적으로 보존되지만 석회 반죽이 마르기 전에 재빨리 그림을 그려내야 하고, 수정도 불가능 해 최고난도의 작품기법으로 손꼽힙니다. 이 때문에 하루에 그릴 수 있는 작업량이 정말 한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놀라운 속도로 이 큰 그림을 완성합니다. 4년간 천장에 하루 15시간씩 매달려 쉬지않고 작업한 끝에 1512년 11월1일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Ceiling)를 공개합니다. 그림을 본 사람들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천장화를 그 짧은 기간에 완성한 것도 놀랄 일인데, 그림의 내용이나 완성도가 너무도 충격적이었습니다. 가운데 중앙에는 하느님의 말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지는 '천지창조'를 주제로,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등 9개의 큰 그림과 그 주변에는 예수의 조상 얘기 등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인물마다 근육에 명암을 넣어 마치 살아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특히 하느님이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는 모습을 형상화 한, 두 남성이 손 끝을 맞대려 하는 모습의 '아담의 창조' 장면은 너무도 유명합니다.
미켈란젤로는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작업장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또 다른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Raffello Sanzio)는 미켈란젤로 몰래 작업장에 들어갑니다. "조각가 주제에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겠어"라고 비웃으며 성당에 들어선 순간 너무 놀라 얼굴부터 가렸다고 합니다. 그림 속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움직이는 모습에 순간 조각작품으로 착각해 얼굴로 쏟아질까 두려웠던 것이죠.
인류 최대 역작은 이렇게 완성됐지만 젊은 미켈란젤로의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졌습니다. 4년간 거꾸로 매달려 작업하면서 목과 허리는 완전히 뒤로 꺾여버렸고, 얼굴과 눈으로 쏟아지는 석회 반죽과 안료 때문에 한쪽 눈은 거의 실명에 이를 정도로 나빠졌습니다. 그럼에도 와인과 몇 조각의 빵만 들고는 비계에 올라 쉬지않고 작업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실로 광기와 집념으로 똘똘 뭉친 천재였습니다.
#2.1486년 어느 날 메디치 가문의 수장 로렌초 디 메디치(Lorenzo di Medici)가 자신의 정원을 산책하다 어린 소년의 조각 작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소년은 목동의 신 '파누우스'의 개구진 행동과 이에 놀란 여신들이 기겁하는 모습이었는데 그 표현력이 너무도 놀라웠다. 그런데 나이가 든 목동의 신의 치아가 많았다. "파누우스는 치아가 그렇게 많지 않을걸." 로렌초가 한 마디 하면서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산책을 하던 로렌초는 또 놀랐다. 그 소년이 파누우스의 윗니 두 개만 남기고 치아를 성글게 조각해 놓았던 것이다.
그 소년이 11살의 미켈란젤로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 후 메디치 가문에 들어가 본격적인 엘리트 수업을 받았습니다. 이미 10대때부터 메디치 가문을 찾는 석학들과 토론을 즐길 정도로 영민했습니다. 그러나 1492년 로렌초가 죽고 2년 뒤 메디치가는 피렌체에서 쫒겨나고 미켈란젤로도 이 때부터 피렌체를 떠납니다. 로마에 입성한 1498년 8월 생 드니 수도원장 등이 찾아와 그에게 작품을 의뢰합니다. 인류의 조각 역사상 3대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 '피에타'가 이때 탄생합니다. 24살 청년이 1년만에 조각한 피에타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축 늘어진 그리스도를 끌어안은 성모 마리아의 표정은 아들을 잃은 슬픔보다는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듯 온화합니다. 특히 성모를 감싼 옷자락은 대리석이 아닌 비단을 두른듯 부드럽고 세밀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3년 뒤인 1503년 피렌체에서 인류 최고의 걸작 '다비드'를 탄생시킵니다. 1503년 6월13일 미켈란젤로가 대중을 쳐다보며 장막을 걷어내자 높이 5.17m, 무게 5.5톤의 아름답고 늠름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안정적인 콘트라포스트 모습으로 적장 골리앗을 노려보는 부릅뜬 눈과 잔잔한 근육질 몸에 펼쳐진 팽팽한 혈관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비드였습니다. 특히 손가락으로 돌맹이를 굴리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적장을 한방에 쓰러뜨릴 것 같았습니다. 가히 걸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거의 1년이 지난 뒤에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이 미켈란젤로를 시기해 설치 장소를 외진 곳으로 옮기자고 했기 때문이죠. 수 개월의 논쟁 끝에 다비드는 1504년 5월14일 작업소 문 위쪽 벽을 헐어내고 받침대를 굴려가며 피렌체 성당에서 시뇨리아 광장까지 이동합니다. 바로 옆의 거리였지만 무려 4일이 걸립니다. 이 과정에서 다비드에 관한 또다른 놀라운 사실이 알려집니다. 높이가 5m를 훌쩍 넘지만 두께가 얇은 곳이 45cm밖에 안됐던 것이죠.
사실 미켈란젤로가 만든 걸작은 피렌체 대성당 창고 한 켠에서 40년째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돌이었습니다. 티끌조차 없는 가장 완벽한 대리석이었지만 한 조각가가 결을 모르고 망치를 내리치는 바람에 납짝하게 쪼개져 쓸모가 없어진 돌이었습니다. 좁은 곳은 채 1m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미켈란젤로는 이 쓸모없어진 대리석으로 최고의 걸작품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다비드의 모습도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보통의 다비드는 어린 모습의 다비드가 골리앗의 머리를 밟고 있거나, 손으로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에는 골리앗이 없었습니다. 대리석이 워낙 얇아 골리앗을 표현하지 않은 것이죠. 대신 미끈한 청년 다비드가 돌을 던지기 직전 모습을 찰나로 담아내 마치 골리앗이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오히려 긴장감을 부여했습니다.
#3.미켈란젤로는 신이 인간 세상에 잠시 내어준 천재였습니다. 예술에 대한 집념과 열정은 '광기' 그 자체였습니다. 155㎝의 짱달막한 키에 몸집도 작았던 미켈란젤로는 독신으로 살면서 작업중에는 몇 조각의 빵과 와인만 먹고 하루종일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게 와인이었습니다. 조카와 편지를 할때는 늘 와인을 가져다달라는 요청을 할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인생 말년인 1459년에는 와이너리를 사들입니다. 토스카나주 시에나에 위치해 있는 '파토리아 니따르디(Fattoria Nittardi)'입니다. 1183년에 수도사들이 세운 와이너리로 미켈란젤로와 그의 가문은 250년간 이 와이너리를 소유했습니다.
이 와이너리가 만드는 '까사누오바 니따르디 끼안띠 클라시코(Casanuova Nittardi Chianti Classico)'는 이탈리아의 '샤또 무똥 로췰드(Chateau Mouton Rothchild)'로도 불립니다. 1981년부터 미켈란젤로에 헌정하는 뜻을 담아 매년 살아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의 작품을 라벨에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5년 빈티지는 존 레논의 부인 오노 요코가 디자인한 작품을 썼으며, 2011년은 김창열 화백의 작품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작가들은 작품 값 대신 와인을 받습니다.
끼안띠 클라시코는 산지오베제(Sangiovese) 100% 와인으로 전형적인 루비빛에 강력한 산도, 잘 녹아든 타닌이 특징입니다. 미디엄 바디 정도로 무겁지 않으며 붉은 색 과실의 맛과 향이 주를 이룹니다. 약간 쿰쿰한 이스트향과 가죽향 등 2차 향도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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