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경기일보 2023. 7. 2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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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고 날카롭게 보이는 주먹도끼가 서 있다. 이곳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검색한다. 지도를 조금씩 축소하자 박물관이 위치한 마을과 들판을 감싸듯 휘돌아 흐르는 한탄강 물줄기가 뚜렷해진다. 경기문화재단 전곡선사박물관(관장 이한용)이 위치한 곳은 연천군 전곡읍 평화로 443번길 2이다. 숲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분홍 꽃을 활짝 피운 자귀나무 우듬지 너머로 둥글고 길게 이어진 은빛 건물이 살짝 모습을 보인다. 둥글고 기다란 은빛 건물은 두 개의 언덕을 잇고 있다.

1978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됐다. 전곡리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윤원규기자

■ 주먹도끼 하나가 역사를 바꾸다

전곡선사박물관 로비에 들어서자 공룡의 배 속이나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전곡선사박물관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주는 ‘디지털 수장고’와 교육체험특별전 ‘산새들새’를 알리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디지털 수장고’는 1978년 한탄강에서 발견돼 고고학 역사를 다시 쓰게 한 주먹도끼를 비롯한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과 호모 에렉투스 같은 인류의 조상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주먹도끼, 청동 검, 전동드릴 같은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360만년 전부터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1969년까지 도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도구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다.

1층 상설전시실은 강이 흐르는 숲처럼 아기자기하다. ‘왜 인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했을까?’ 전시실에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이다. 인류가 시작된 곳은 아프리카 초원이었다. 원숭이처럼 나무 위에서 열매를 먹으며 생활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조상은 지구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무성한 숲이 초원이 되자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생활하게 된다. 앞발을 드는 일을 반복하면서 골반과 척추가 진화돼 두 발로 걷기 편한 체형으로 바뀌었다. 자유롭게 된 두 손은 도구를 만들고 음식을 운반하거나 자식을 돌보는데 사용했다.

처음 마주하는 유물은 ‘전곡의 주먹도끼’이다. 유리관 안에 전시된 다섯 개의 주먹도끼는 이 박물관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낸 주먹도끼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만능도구였습니다. 주먹도끼는 큼직한 돌을 다듬어서 끝이 뾰족하거나 타원형으로 날을 만든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입니다. 주먹도끼는 모양이 나무를 쪼개는 데 쓰는 쇠도끼와 비슷해 지어진 것입니다. 주먹도끼로 나무 다듬고, 짐승의 가죽을 벗겨 내고, 고기를 발라내고, 뼈를 부쉈지요. 이처럼 구석기시대 사람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만능도구였던 주먹도끼를 ‘구석기시대의 맥가이버칼’이라고 부르지요.” 

전곡리 주먹도끼는 흔히 아슐리안 내지 아슐리안 스타일의 주먹도끼라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전곡리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들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서양에만 있었다는 모비우스 교수의 학설을 무너뜨리고 세계 구석기 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한 획기적인 유물이다. 

약 700만 년 전의 투마이로부터 약 1만 년 전의 만달인까지 총 14개체의 화석인류의 진화과정을 만날 수 있는 인류진화의 위대한 행진. 윤원규기자

■ 주먹도끼, 두 발로 걸으면서 시작된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전시실의 중앙은 인류의 진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700만년 전 살았던 가장 오래된 화석인류 ‘투바이’는 물론 세련된 이름을 가진 ‘루시’와 ‘루시앙’도 두 발로 걸었다는 점을 빼면 원숭이와 구분하기 어렵다. 약 180만년 전에 출현해 최초로 석기를 사용한 ‘호모하빌리스’를 유심히 살펴본다. 털이 많이 줄어든 ‘호모 에르가스터’를 보니 원숭이와 달라진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불을 사용한 흔적을 뚜렷하게 남긴 베이징원인 ‘호모 에렉투스’는 약 70만년 전부터 사냥꾼으로 살았고, 동굴에 멋진 채색화를 남긴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3만년 전까지 살았다. 이 무렵에야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는데, 한반도 후기 구석기 시대의 주인공이다. 뼈바늘을 사용하고 장례를 치른 흔적을 남긴 ‘산정동인’이나 1만년 전의 ‘만달인’은 체형에서 현대인과 별 차이가 없다.

털코뿔소, 매머드 등 전곡리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동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윤원규기자

인형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모두가 두 발로 걷는 모습이다. 빙하기의 대형포유류 ‘매머드’ 와 얼룩말도 구석기시대의 주인공이다. 매머드의 다리뼈와 가죽으로 만든 움집이 원시시대의 풍경을 연출한다.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해 살아남는 생존능력,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최고의 강점입니다.”

현생 인류가 전 지구에 퍼져 살기 시작한 후기 구석기시대에 예술 활동이 시작됐다. 인간의 역사는 곧 예술의 역사이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과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을 재현한 공간도 빠뜨릴 수 없는 과거로의 여행지이다. 아빠 손을 잡은 어린이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동굴로 들어간다. 화려하게 채색된 순록과 들소, 생동감 있게 그려진 말 그림들은 순식간에 원시시대로 인도한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왜 동굴에 그림을 그렸을까? 동굴 벽화와 동굴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동굴이 주술적 장소, 특별한 무덤, 성년의식의 장소로도 사용됐던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안내하던 심경보 학예연구사가 동굴을 공연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려준다. 전시장 곳곳에서 영상을 통해 구석기시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화석만 남은 선사시대를 첨단의 기기로 역동성 있게 소개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털옷을 입은 원시인이 주먹도끼로 가죽을 자르고, 창을 들고 동물을 사냥한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원시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영상 속 인물이 “아까부터 자네와 말하고 싶었네”라며 화답한다. 원시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레고로 제작한 모형들은 어린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아 교육과 연계해 새로운 모형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매머드 뼈 막집, 이 막집을 짓기 위해서 적어도 95마리의 매머드에서 나온 15톤 정도의 뼈가 필요했다. 윤원규기자

■ 더 가깝게 다가가고 더 친절하게 맞아주는 박물관

“한탄강세계지질공원센터가 박물관 근처에 있기 때문에 지질답사팀들이 많이 관람하러 오십니다. 박물관이 길목의 초입에 위치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지요. 평소 이 지역을 이해하도록 지질 관련 영상물을 상영하지만, 이렇게 전자칠판을 설치해 강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바로 옆에 지질연구자들이 기증한 화석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지난해에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나가기 좋도록 이동 공간을 넓히고 전시물의 높이를 낮춰 어린이들이 관람하기 좋도록 변화를 줬지요. 좀 낮아보이지만 일반인들이 관람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노후화된 시설도 약간의 변화를 주어 관람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미란 실장은 상설전시실 옆 공간의 활용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공간은 연천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와 학생 등 지역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박물관 공간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시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낭비를 줄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지요.” 

기획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교육체험특별전 〈산새들새〉에서는 다양한 새들의 습성과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파랑새 등 다양한 새 박제 모습. 윤원규기자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자세나 공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는 마음가짐이 훌륭하다. 지하1층 기획전시실에도 볼거리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산새들새’전은 전곡선사박물관 주변에 새가 많은 것에 착안한 생태 관련 전시다. 호랑지빠귀, 후투티 같은 예쁘지만 낮선 새는 물론 까치와 꾀꼬리처럼 익숙한 새들까지 다양한 새들을 만날 수 있다.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구석기유적에 위치한 연천전곡선사박물관은 2011년 4월, 선사시대 문화와 인간생태를 주제로 개관했다. 박물관 전경. 윤원규기자

1993년부터 전국선사박물관이 주관하는 ‘전곡리 구석기 축제’는 박물관의 자랑이다. 이러한 사업의 기획과 진행을 맡았던 이가 이한용 관장이다. 2011년 4월 개관한 전곡선사박물관의 학예팀장을 시작으로 2015년부터는 박물관장으로 재직했는데, 최근 신임 관장 공개모집 절차를 거쳐 다시 연임됐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과 33년째 인연을 이어가는 이 관장의 꿈은 단단하다. “세계사를 뒤엎은 전곡리 선사유적의 가치를 더 널리 알리고, 도민과 지역사회, 나아가 전 세계와 소통하며 전곡선사박물관을 구석기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 안긴 전곡선사박물관은 휴식과 충전을 위한 여행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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