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블라디보스토크 탈북민 모자 택시로 이송 중 러시아가 연행”
지난달 초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북한 총영사관에서 탈출한 북한 외교관 가족을 우리 정부 측이 보호해왔으나, 러시아 정부 측이 다시 연행해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부 핵심관계자는 20일 김금순(43) 씨와 박권주(15) 군이 주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총영사관에서 탈출한 뒤 상황과 관련, “지난달 그들은 우리 측 시설에서 보호됐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어 “이들을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우리 측 인사가 이들과 택시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으로 가던 중, 러시아 경찰 단속에 잡혔다”며 “러시아 경찰이 이들을 연행해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들이 한국 정부 측 인사를 만나 보호를 받고 있었고 귀순 의사를 밝혔다면 정치적 망명 의사를 밝힌 국제법상 난민 지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난민지위에 관한 협약은 난민을 인종·종교·국적·특정 사회 집단에의 소속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공포 때문에 자국 국적 밖에 있는 자, 자국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않는 자로 규정한다. 다만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탈북민이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는 경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유엔난민기구(UNHCR)의 조력 하에 입국하는 경우도 일부 있다. 이 경우 제3국은 난민을 본인 의사에 반해 국적국으로 추방해선 안 된다.
러시아 수사기관이 이들을 연행해 조사한 뒤 실종신고를 한 당사자인 북한총영사관 측에 신병을 넘겼는지, 러시아 측이 아직 데리고 있는지는 공식 확인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확인해드릴 내용이 없다”며 “다만 원론적으로 말씀드리지만 탈북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로 북송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의문2: 택시타고 공항으로?
우리 측 대응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블라디보스토크 사정을 잘 아는 한 러시아 전문가는 “해외의 대사관들이 해당 국가 영토로 간주되어 보호받는 것처럼, 우리 외교관이 탄 외교관 차량이었다면 그 차량 내부도 해당 국가 영토처럼 간주돼 외교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검문에 응하지 않아도 러시아 경찰은 어찌하지 못한다”며 “우리 측 관계자와 김씨, 박군이 택시를 탔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교라인을 통한 소통이 있었다면 한·러가 같이 또 다른 국가를 경유하기로 하는 등의 여러가지 방식을 논의하고 협상할 수도 있는데, 이때는 우리가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문3: 뺏긴 뒤엔 어떤 노력?
검문에서 김씨와 박군이 연행된 뒤에 우리 정부가 이들의 신병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 입장에서 김씨와 박군은 실종신고가 접수된 신분인 만큼, 연행한 뒤 일정한 조사를 거치는 시간을 가졌을 가능성이 크다. 범죄 여부, 귀순 의사 등 다양한 확인 절차를 거치는 동안 일정한 시간이 소요됐을 가능성이 있다. 김씨와 박군의 총영사관 탈출 이후 상황이 정부 내에서도 극소수만 인지한 사항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물밑 협상이 진행 중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세계일보는 주한 러시아대사관 측에 이달 4일과 13일 두차례 서면 질의를 보냈다. 러시아 경찰의 연행이 사실인지를 비롯해 △김씨와 박군의 현 위치와 건강상태 △범죄혐의 등 조사 여부 △망명의사 확인 △연행의 정당성 △처리방침 등에 관한 입장을 물었다. 러시아 대사관 측은 질의를 확인한 뒤 이날까지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한편 김씨와 박군이 경찰에 연행됐다는 소식은 일부 매체에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한 형태의 보도로 나오고 있다. 다만 체포 주체와 방식, 김씨와 박군의 현 위치 등 세부 사항은 각기 다른 내용들이 퍼지고 있다.
다만 블라디보스토크 거주 한인들과 관련 커뮤니티들에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한 인사는 세계일보에 이들의 탈북 관련 뉴스는 거의 공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에는 교민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북한 식당 이야기도 하고, 어디가 맛집이라는 이야기도 나누곤 했으나 현 정부 출범 이후에는 혹시나 오해를 받기라도 할까봐 북한 관련은 대화는 서로 절대로 꺼내지 않는 분위기”라며 “한러관계가 워낙 불안해 우리 걱정이 훨씬 크다보니 블라디보스토크에서의 탈북 관련 뉴스에 대해서도 전혀 이야기를 꺼낸 적도, 관련 소문이 돌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 ‘대동강 TV’에서 김씨와 박군이 지난달 중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멀지 않은 중소도시에서 러시아 연방안보당국(FSB)에 체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의 현 위치 관련,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감금돼 있다며 “국경이 개방되면 항공편으로 최우선 송환될 것”이라고 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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