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진료체계 무너지기 일보직전"… 복지부, 지역 거점병원 육성
#세종시에 거주하는 송모군(24개월, 진단명 신경모세포종)은 창백해보이고 팔다리가 아프다고 해 혈액검사를 받고 백혈병이 의심돼 충남대병원을 방문했다. 정밀 검사 결과 신경모세포종 4기로 진단받았다. 가정 상황상 충남대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했으나 세부전문의 혼자서 조혈모세포이식 환자를 전담할 수 없어 서울 병원으로 전원됐다. 환자는 중간 혈액검사나 처치라도 충남대병원에서 받기를 원했으나 소아암 전담인력의 부재로 서울 병원을 오가고 있다.
앞으로는 서울까지 가지 않고도 지역에서 소아암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소아암 진료체계'가 구축된다. 이를 위해 정부가 내년부터 서울을 제외한 전국 5개 권역에 소아암 거점병원을 육성하기로 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인력 급감으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감안해 지역 내 전문의와 협력하는 등으로 맞춤형 소아암 전담진료팀을 구성해 운영할 예정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20일 서울 종로구 HJ비지니스센터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소아암 진료체계 구축방안'을 발표했다.
거점병원은 △충남권역(대전·충남·충북·세종) 충남대병원 △호남권역(광주·전남·전북·제주) 화순전남대병원 △경북권역(대구·경북) 칠곡경북대병원 △경남권역(부산·울산·경남) 양산부산대병원 △경기권역(경기·강원) 국립암센터다.
지역암센터와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등 기존에 정부가 지정한 공공의료 수행기관 중 소아암 진료를 위한 핵심기능(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보유, 조혈모세포 이식 가능, 외래·입원 및 응급진료 기능 유지 등)이 유지되고 있는 병원으로 특정했다. 지역과 병원에 적합하면서 실행 가능한 진료모형을 개발했다.
소아암은 백혈병 등 혈액암이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으며 한 해 1300명 정도가 신규 발생하고 있다. 소아암의 5년 상대생존율(일반인과 비교하여 암환자가 5년간 생존할 확률)은 86.3%로 전체암(71.5%)보다 높아 소아암 환자는 적절한 치료를 통해 정상적인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진단 후 완치까지 1~2년간 집중 치료가 필요함에 따라 학교생활의 공백 등으로 아동의 정서적 발달에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이런 소아암 진료를 위해 수련을 마친 세부전문의(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전국적으로 69명에 불과하다. 소아과 전공의 확보율이 2020년 68.2%에서 지난해 27.5%로 급감하는 상황에서 중증질환이며 노동집약적인 소아암 분야는 인력난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거점병원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중심으로 병동 촉탁의를 신규채용(2~3명)하고 소아감염과 소아내분비 등 타분과 소아과 전문의와 협력, 지역 내 타 병원 소속 전문의의 진료 참여 등 지역별 의료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소아암 전담진료팀을 구성·운영한다.
화순전남대, 양산부산대, 충남대병원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와 입원전담의 또는 촉탁의, 타분과 소아과 전문의가 협력하는 모형에 해당한다. 이들 병원은 올해 말 수련이 종료되는 전공의를 촉탁의로 채용하고, 현재 근무 중인 입원전담의 또는 촉탁의 등을 진료전담팀으로 합류시켜 전문인력의 이탈을 방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외래진료와 조혈모세포 이식에 집중하고, 신규 또는 지원인력을 병동과 중환자실, 응급실에 배치해 소아암 환자에게 안정적인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칠곡경북대병원의 경우 지역 내 대학병원이 다수 분포한 지역 특성을 반영해 대학병원 소속 소아혈액종양 전문의와 지역 병·의원에 근무 중인 소아암 치료경력이 있는 전문의가 거점병원의 진료에 참여하는 개방형 인력 활용 모형이 적용된다.
강원도 지역은 소아암 진료를 위한 세부 전문의가 없는 취약지로, 국립암센터 소속 소아암 전문의가 강원도 내 대학병원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소아암 외래진료를 지원한다.
이렇게 하면 지역 내 거점병원에서 진단부터 항암치료, 조혈모세포이식 및 후속진료까지 완결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다만 지역 거점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고난이도 중증 외과 수술과 양성자치료기 등 첨단장비를 통한 항암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수술팀을 갖춘 수도권 병원이나 양성자치료기 보유 병원인 국립암센터에서 치료한 후 지역 거점병원으로 회송해 항암 등 후속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연계 체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인건비 등 지원을 위한 관련 예산으로 93억원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의료계에선 예산 지원이 시급하다고 본다. 백희조 화순전남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청소년 암환자 진료 체계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며 "기존 인력 이탈을 막고 신규 인력을 채용할 수 있게 적절한 인력 지원과 보상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윤 칠곡경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상시 대기해야 하는 근무조건이고 민원도 많지만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세부 전문의가 연합하자고 결의했다"며 "지역 의료가 붕괴되지 않도록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고 예산 확보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소아암은 인구 감소에 따라 적정한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필수의료 분야"라며 "소아암은 진단 후 1~2년 동안 집중치료가 필요함을 고려해 진료체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이어 "오는 8~9월 중 소아진료체계 개선 방안 대책을 추가로 발표할 계획이고 심뇌혈관 종합대책, 중증진료체계 개선 대책 등도 준비 중"이라며 "5~10년 장기 호흡을 가지고 필수의료 살리기를 해나갈 것이고 윤석열 정부 5년간 그 기틀을 반드시 다져놓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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