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삼성 준법위에 달렸다?"…전경련 러브콜 받은 4대그룹, 재가입 '고민'
4대그룹, 삼성 준법위 결정 후 함께 움직일 듯…"전경련, 재가입 명분 아직 충분치 않아"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에 공문을 보내 재가입을 공식 요청한 가운데 각 그룹들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결정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 준법위에서 이를 승인해야 재계 1위인 삼성이 전경련에 재가입할 수 있는데, 삼성이 먼저 나서야 다른 그룹들도 결정에 부담을 덜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여서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지난 19일 '전경련 경영위원회' 명의로 삼성·SK·현대자동차·LG 등 4대 그룹 주요 계열사에 '한국경제인협회 동참 요청 서한'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전경련 경영위원회는 전경련이 2017년 회장단사를 중심으로 만든 의사결정기구로, 롯데, 한화, GS, 한진, 두산, 코오롱, 풍산, 삼양 등 10여개사로 구성돼있다.
앞서 전경련은 지난 5월 조직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명칭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 통합하는 방안을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961년 설립 당시 처음 지었던 명칭으로, 전경련에서 한국경제인협회로 다시 명칭을 바꾸는 것은 55년 만이다.
한경연은 오는 8월 22일 총회를 거쳐 한경연을 흡수 통합하는 안건을 처리하고 신임 회장 선임 안건도 이 때 상정할 계획이다.
4대 그룹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전경련을 탈퇴했으나 산하 연구기관인 한경연 회원사 자격은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한경연 해산에 동의했지만, 전경련 회원 승계 여부에 대한 공식 입장은 아직 밝히지 않았다.
전경련은 해당 공문에서 "기존 한국경제연구원 회원사인 4대 그룹은 한경협 회원사로 그 지위가 승계된다"며 "적극 동참해 주시기를 정중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경협은 회원사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함께 돕겠다"고 강조했다.
◆"허창수 때와 다르다"…김병준 이후 신임 회장, 이재용 등판?
전경련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적폐'라는 낙인이 찍혀 그간 재계에서 꾸준히 외면을 당해왔다. 당시 K스포츠·미르재단을 위한 기업들의 후원금 모금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발각된 탓이다.
전경련은 지난 1961년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이 일본 게이단렌을 모티브로 국내 대기업들을 모아 만든 곳으로, 한 때 명실상부한 재계의 소통 창구였다. 하지만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건으로 600여 개 회원사가 400여 개로 줄었고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이 전경련을 줄줄이 탈퇴하면서 입지가 많이 약화됐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주요 행사에 초대받지 못하는 '패싱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재계 위상이 추락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전경련의 입지는 점차 높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윤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2월 합류하면서 국내외서 정부와 손잡고 굵직한 행사를 주관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올해 3월 일본에 이어 지난달 미국에서도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을 전경련이 주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친정권 인사를 앉힌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봤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지난 20대 대선 때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며 당선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는 등 사실상 정치인으로 여겨져왔다. 이에 전경련이 전문성이 부족한 친정권 인사를 앉혀 현 정부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친정권 인사란 일부 시각이 있지만 김 회장 직무대행 체제가 되면서 전경련이 어느 한 기업에 종속된 듯한 모습이 아닌 중립성을 띈 싱크탱크로서 다시 회복하는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며 "4대 그룹들도 최근 전경련이 내놓은 쇄신안과 더불어 김 회장 직무대행과 각 그룹 총수들이 경제사절단에 속해 많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재가입을 다시 검토하고 나선 듯 하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선 주요 그룹 총수가 아닌 김 회장 직무대행과 같은 중립성을 띈 인물이 새로운 전경련 회장으로 선임돼야 한다고 봤다. 주요 그룹들이 더 이상 하나의 주력 품목으로 사업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 '대한상의=SK', '경총=CJ'처럼 재계 총수가 맡은 경제단체에 각 기업들이 사업 전략을 노출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반도체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미국과 중국이 자국 공급망 강화에 나선 데다 전 세계적으로 자원을 무기화하고 나서면서 국내 기업들이 각자 전략적으로 이를 대응하기가 쉽지 않아졌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이들의 의견을 취합해 정책을 제안하는 창구로서 역할을 할 만한 곳으로 전경련이 가장 적합하다고 보지만, 특정 기업의 총수가 또 수장을 맡게 되면 4대 그룹이 재가입을 한다고 해도 기밀 노출이 어려워 기대했던 전경련의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쇄신을 얘기하면서 전경련이 위상을 생각해 주요 그룹 총수를 새로운 회장으로 선임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며 "글로벌 네트워크가 잘 갖춰져 있으면서도 기업들의 의견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을 전경련이 내세워 4대 그룹이 재가입을 할 수 있을 만한 명분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재 전경련의 신임 회장으로 거론되는 인물 중에선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재계 네트워크가 풍부한 인물로, 미국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이사, 한미재계회의 위원장 등을 거친 바 있다.
한 켠에선 전략 기술 측면에서 국가 대항전으로 치달은 글로벌 정세를 감안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전경련의 새로운 수장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 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탄탄한 데다 회사 내에서 대표이사가 아니라는 점, 재판 중이지만 국가 경제를 위해 뛰는 모습을 앞장서서 보여줄 경우 이미지 개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 이 회장 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인물을 앞세우지 못하면 전경련 입장에서도 부활한다는 의미가 다소 퇴색될 수 있다고도 봤다.
재계 관계자는 "첨단 기술과 관련해 국가 전략전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정부가 법안이나 정책을 통해 적극적으로 기술력을 가진 대기업들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며 "외교 중심이 경제로 초점이 맞춰진 상황에서 대기업들의 의견을 모아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국내에서 전략 기술을 가장 많이 가진 삼성이라는 점에서 이 회장이 이번에 나설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재가입 가능성 높아진 4대 그룹…"삼성 준법위 결정 중요"
재계에선 4대 그룹의 최근 움직임으로 볼 때 전경련에 재가입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전경련의 위상이 다소 올라간 데다 최근 쇄신안을 꺼내 들며 이미지가 이전보다 개선됐다고 판단해서다.
일단 4대 그룹은 다음주부터 있을 계열사별 이사회에서 전경련 재가입 여부를 공식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삼성은 전경련 복귀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본격 나선 분위기지만, 삼성 준법위의 판단에 따라 한경연 회원 명부 이관 안건의 찬반을 결정해야 하는 만큼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 이재용 회장이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2년 6개월 징역까지 치른 만큼 재가입에 대한 명분도 필요한 상황이다.
재계에선 삼성 외부의 독립적 준법감시기구인 삼성 준법위의 결정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을 제외한 다른 그룹들은 아직 이 같은 역할을 하는 기구가 따로 마련되지 않아 자칫 삼성보다 먼저 전경련 재가입을 할 경우 괜시리 '정경유착' 이미지로 불똥이 튈 수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전경련 재가입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삼성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른 그룹들도 준법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라며 "이전까진 각자 의견을 내려는 분위기였지만 최근에는 삼성이 결정을 먼저 내린다고 해도 재가입 의사는 4대 그룹이 함께 밝히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 준법위는 전경련의 혁신이 있다면 복귀 가능성에 대해 적극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지난 18일 정례회의 참석 전 전경련 복귀에 대한 질문에 "정식으로 요청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오늘 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진 않았다"며 "과거 정경유착의 고리라는 폐해가 있었기 때문에 삼성의 재가입 여부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헌법 119조 1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해야한다는 것인데 정치 권력이나 전경련이 이를 존중할 의사가 있는지, 스스로 확고한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그것에 따라 위원회에서도 전경련 재가입 여부를 논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계 서열 2위인 SK도 전경련 복귀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태원 회장은 최근 전경련 복귀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전경련이 잘 되기를 기대하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답변했다.
최 회장은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전경련 회장단을 지낸 경험이 있다. 그는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시너지를 내서 지금의 어려운 문제를 같이 해결하는데 필요한 동반자로서 관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국정농단 논란으로 탈퇴한 4대 그룹이 재가입을 하기 위해선 전경련이 먼저 충분한 명분을 만들어줘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줘야 한다"며 "차가운 프라이팬에 계란을 먼저 깨트릴 수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경련 재가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기업의 의지뿐만 아니라 대외적 여론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듯 하다"며 "기업들도 전경련의 공문을 일단 받은 만큼 고민을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전경련이 제안한 시일까지 입장을 정리할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Copyright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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