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차도 못 버틴 물살, 맨몸으로 수색…“군인이 소모품인가”

이유진 2023. 7. 2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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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인근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숨진 채 발견된 해병대 1사단 소속 채아무개(20) 일병의 부모는 아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고 당시 채 일병 등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 등 기본적인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병대 누리집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군 당국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며 장병들을 '소모품' 취급하지 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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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순직 수사 논란][2023 폭우]해병대 누리집·SNS ‘안전불감증’ 질타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전우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 1사단 상륙돌격장갑차 KAAV가 18일 오후 경북 문경시 영순면과 예천군 풍양면 경계에 있는 삼강교 주변에서 폭우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빠른 유속을 견디지 못하고 5분여 만에 뭍으로 올라왔다. 연합뉴스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얼마나 한다고 구명조끼도 안 입히고 수색을 시키냐고. 이건 살인 아닌가요 살인”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 보문교 인근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숨진 채 발견된 해병대 1사단 소속 채아무개(20) 일병의 부모는 아들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연합뉴스>, <영남일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채 일병의 아버지는 부대 관계자에게 “물살이 이렇게 센데 어제 비도 많이 내렸는데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냐”며 거세게 항의하다 오열했다. 채 일병의 어머니는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그렇게 해병대에 가고 싶어 해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갔는데, 어딨어요, 내 아들”이라며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진 ㄱ일병의 아버지가 해병대 관계자들에게 항의하는 모습. <영남일보> 유튜브 영상 갈무리

사고 당시 채 일병 등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 등 기본적인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해병대 누리집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군 당국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며 장병들을 ‘소모품’ 취급하지 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해병대 누리집 자유게시판을 보면, 18살 아들을 둔 엄마라는 강아무개씨는 이날 올린 글에서 “아이가 해병대 등에 입대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어이없는 인재로 인해 (채 일병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고 내 목숨을 걸고 (해병대 입대를) 만류하겠다”고 밝혔다. 강씨는 “우리나라 병사들을 대하는 (군 당국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난다”며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김아무개씨는 “장갑차도 유속 때문에 5분만에 철수한 상황에서 그 누구도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나”며 “운이 나빴다, 단순 사고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소중한 생명에 대한 진심 어린 태도, 막중한 책임과 또 다른 희생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19일 오전 경북 예천군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해병대 전우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차아무개씨도 “해병대는 그저 군기 쎄고 악으로 깡으로 뭉친 소모품인가’”라며 “꽃다운 청년을 마치 파리 목숨 다루듯 그렇게 거센 강물에 내몰았나. 같은 전우·동료도 하나 못 지키는, 아니 지킬 생각조차 없는 지휘관들은 자격이 없다”고 질타했다.

군 전역자들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군 당국의 태도를 지적했다. 해병대 전역자라는 이아무개씨는 “운 좋게 살아있는 남은 병사들이 평생 안고갈 마음의 짐은 어떻게 책임질 거냐”며 “반성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무고한 병들 희생시키지 마라”고 했다. 김아무개씨는 “7~8년 전에 해군(을) 전역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군대는 장병을 소모품 취급하는 게 당연시하는 게 느껴진다”고 적었다.

19일 오후 경북 예천군 호명면 선몽대 인근 하천에서 수색 드론이 하천을 비추며 실종된 해병 장병을 찾고 있다. 연합뉴스

해병대사령부는 이날 오전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유족 여러분께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을 드린다”며 “현재 해병대 안전단이 호우피해 복구작전에 투입된 부대의 안전 분야에 대해 현장에서 점검하고 보완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애초에 무리한 수색 작업이었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트위터에는 “아무리 귀신 잡는 해병이라지만 진흙탕 급류에서(의) 구조작업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구명조끼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라는 상관의 명령에 묵묵히 최선을 다했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주검뿐”이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실제로 수색작업을 목격한 주민들은 해병대원들이 ‘인간띠’ 형태로 손을 잡고 늘어서는 방식으로 강을 훑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초 신고자라고 밝힌 미호리 주민은 <한겨레>에 “내성천은 모래 강이라서 보통 강과 다르다. 물 아래 지반이 약해 강가에서 수색을 했어야 한다. 왜 강 가운데까지 들어가는지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20일 0시47분께 경북 예천스타디움에서 수색 중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해병 장병을 태운 헬기가 전우들의 경례를 받으며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실종 14시간 만인 19일 밤 11시8분 군복을 입은 채로 발견된 채 일병의 주검은 이날 0시45분께 태극기에 덮여 해병대 헬기로 경북 포항시 해군포항병원으로 이송됐다. 전우들은 채 일병을 태우고 이륙하는 헬기를 향해 경례를 하며 예우를 다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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