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경제성장은 비례하는가? [조원경의 현인들의 경제적 조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 8~1832.3)는 독일 고전주의 성향 작가이자 철학자, 과학자다. 바이마르 대공국에서 재상직을 지냈다. 궁정극장 감독으로 연극을 세계적 수준에 올려놨다. 셰익스피어뿐 아니라 프랑스의 고전작가들을 평가했고, 그리스 고전극의 도입도 시도했다. 대표작으로는 ‘파우스트’가 있다. 법률사무소 견습생 시절 약혼자가 있는 샤를로테 부프와 사랑에 빠진 체험을 소설로 옮긴 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1786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했고, 1794년 실러(Friedrich von Schiller)를 만나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웠다. 아버지는 평민 출신이지만 큰 세탁업 공장을 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왕실고문직을 맡아 출세했다.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 아들 괴테도 유복한 환경에서 고등교육을 마음껏 받았다.
한국 학생 ‘동주’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독일 문학도 괴테를 만나 부러운 눈으로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금수저가 아닌 자신의 배경을 원망하며, 너처럼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를 부러워하곤 해.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에서 오대양 육대주 곳곳을 다니는, 부유한 집 자식을 보면 한숨을 쉬곤 하지. 너, 이탈리아 여행 간다며? 참 부럽다.”
찬란한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이탈리아는 누구나 한 번쯤 가고 싶어하는 나라다.
괴테가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응. 권태기가 찾아왔어. 펜을 들어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여행에서 재충전 기회를 마련하려고 해. 아버지의 권유도 한몫했어. 아버지가 그전에 이탈리아 기행에 관한 책을 썼는데, 난 그 책을 보고 여행을 하며 내 나름의 글을 쓰고자 해. 아버지는 내가 더 많은 곳을 다니며 견문을 넓혀야 한다고 하셔.”
동주는 학생의 인권을 유린하는 한국 교육을 떠올리며 괴테에게 푸념했다.
“요새 한국에서는 킬러 문항을 두고 시끄러워. 독일 입시교육은 어때?”
“킬러 문항? 그게 뭔데?”
괴테의 질문에 동주가 이야기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 중에서 대다수 학생이 틀리는 초고난도 문제를 말해. 킬러 문항이 교육당국과 사교육시장의 이권 카르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사교육을 잡으려면 먼저 킬러 문항을 없애야 한다고 대통령이 지시했어. 야당은 대통령 지시의 즉흥성과 시점을 들어 예상되는 입시 혼란 문제를 제기했지. 킬러 문항 삭제 때 발생할 변별력 저하를 거론하는데, 아 참, 입시와 사교육 문제를 두고 이런 비생산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현타가 와. 킬러 문항보다도 인권을 유린당하는 내 또래 학생이 무척 측은해 보여.”
괴테가 독일 교육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말한다.
“독일은 사회 전체적으로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야. 한국처럼 사교육으로 성과를 만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까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아니니? 학생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공부하고 생각하며 문제 해결법을 터득하는 게 중요하지. 독일 교육은 성적을 올리는 것에 최고 목표를 두지 않아. 학교는 행복한 삶을 배우는 터전이어야 해. 교육을 통해 젊은이들 내면에 잠재된 능력과 자신감을 끌어내는 게 목표야.”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부부 사이에서의 교육경쟁과 아이 사이에서도 일어나는 치열한 입시경쟁이 한국의 골칫거리로 오랜 기간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전인교육을 지향하는 너의 집안이나 독일 교육이 부러워. 한국에서는 엘리트 출신 부모 대부분이 자녀가 자신보다 못한 인생을 사는 것을 용납하기 힘들어해.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까지 ‘자녀 학력에 의해 자신이 평가받는다’고 생각하니, 가끔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해. 괴테, 네 아버지의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한국까지 소문이 났어.”
괴테는 약간 당황한 듯 보였지만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직접 혹은 훌륭한 가정교사를 통해 내게 영어와 이탈리아어, 고대언어를 가르쳤어. 나도 미술·음악에서부터 승마·스케이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육을 받았어. 그러나 어떤 강요도 없었어. 나도 동의했어, 즐기기도 했고. 물론 우리 아버지가 특별히 교육에 열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교육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야. 우리 집에 가볼래?”
동주는 괴테의 집에 가게 돼 신이 났다.
괴테 가족은 이층집에 살았다. 집에는 경관을 해치는 창문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는 일부러 창문 하나를 더 만들었다. 무슨 의도였을까? 햇볕이 잘 들어오는 게 공부하는 데에 도움이 됐기 때문일까, 혹시 괴테가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 아닐까?
동주는 괴테의 집에서 독특한 부분을 발견했다. 창문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창틀 부분이 심하게 닳아 있었다. 누군가가 창틀에 팔꿈치를 대고 창 밖을 오랫동안 내다봤다는 뜻이다. 그 순간, 동주의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자주, 오래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면 나무가 움푹 들어간 걸까. 추측하건대 그가 창문을 하나 더 만든 이유는 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 때문이 아니었을까?’
동주는 그런 생각을 하며 괴테에게 말한다.
“너희 아버지가 너를 진정 사랑하시나 보다. 한국의 일반 아버지와는 너무 달라.”
“응. 나는 아버지를 무척 존경해.”
동주는 돈의 힘을 넘는 괴테 아버지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의 재능을 깨우는 데에는 돈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괴테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따스함이 동주의 마음속에 전해진다. 동주는 괴테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대한민국의 일상적인 아버지의 모습과 대비됐다.
괴테가 묻는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어때? 교육열이 대단하시니? 넌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어?”
동주는 말문이 막혔다.
“어떤 아버지상을 원하냐고 묻는다면 저마다 대답이 다를 수 있어. 대부분은 ‘친구 같은’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를 원하는 것 같아. 물론 ‘부자 아빠’도 빠지지 않겠지만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은 측은한 존재야. 바쁜 일상에 쫓겨 새벽에 출근하고 늦게 귀가하는 데에 익숙하지. 휴일에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느라 아이들에게 존재감이 없어.”
괴테는 그런 말을 하는 동주가 측은해 보였다.
동주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이렇게 교육을 표현하지.”
“뭐라고?”
“‘교육? 무관심이 최고야. 아빠 말 들으면 엄마랑 싸움만 나. 할아버지의 돈,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교육에 필수’라고. 괴테, 네 아버지와는 다른 것 같아.”
한국에서 통상 자녀교육은 엄마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동주는 인생의 황혼기에 가정에서 소외된 한국의 아버지상을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괴테가 말한다.
“한국 교육당국에서 어떤 교육정책을 지향하는가는 모르겠지만 교육투자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어도어 슐츠의 교육관을 참조해도 좋겠어.”
“간단하게 요지만 설명해 봐.”
“그는 교육은 국가재정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투자활동으로 봤어. 교육을 통해 국민의 능력과 학력을 신장시켜 개인의 계층상승과 국가의 생산성 증대를 도모할 수 있다는 거야.”
동주는 그 말이 당연하게 생각됐지만 한국의 최근 현실과 비교하면 꼭 지적할 사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학생을 키우는 게 아니라 지식 전수 위주의 고등교육이 판치는 경우는 다르지 않을까. ‘선별 가설이론’이란 게 있지. 교육은 근로자의 생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고, 단지 고용주가 노동자 고용 과정에서 좀 더 능력 있는 사람을 뽑는 데 이용하기 좋은 수단이란 이론이야. 괴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괴테는 거름을 주듯 그를 키운 아버지의 사랑에 충실한 학생이었고 나름의 교육관이 투철했다.
“학교가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을 길러내기보다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는 장소여서야 되겠어? 공교육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변화와 혁신을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할 수 없다면 교육 수준에 따른 경제성장과의 비례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고 봐. 대학진학률이 전부는 아닐 것 같아.”
동주도 괴테의 의견에 거들었다.
“스위스는 세계적으로 부유하고 산업화한 나라이지만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학진학률이 다른 부자 나라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어. 결국 교육이 얼마나 개개인의 능력을 잘 아울러 높은 생산성을 지닌 집단으로 조직화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괴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좋은 학교를 나온다는 것이 신분 상승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독일의 보편적인 부모의 마음은 아닌 것 같아. 물론 내 아버지 같은 열정적인 분도 있지만 말이야. 실제 학교 순위가 매겨지고 있기도 하고, 서열화는 대학의 경쟁 유도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어. 하지만 사교육비를 많이 내서라도 자녀를 꼭 명문대학에 보내고 싶어하는 한국이 매우 신분제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평등 의식이 강하다는 느낌도 드네. ‘다른 사람이 가는데 나만 안 갈 수 없지’ 하는 분위기도 보이고. 이질적인 것이 공존하는 느낌이야.”
한국 정부는 정권마다 사교육시장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도입하고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 왔다. 하지만 실제 교육시장에는 먹히지 않았다. 정말 방법은 없는 것일까?
동주와 괴테는 이에 관해 이야기했으나 해결이 어려운 문제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했다. 다만 잦은 정책 변화로 신뢰를 잃기보다는 기다리고 인내하는 자세여야 한다고 봤다.
여기에 ‘학벌 최고주의’라는 기득권을 내려놓으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국민의 정서와 의식 문제가 교육 문제 해결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하는 게 아닌지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하다는 데에 둘은 동의했다.
비바람에 꿈이 흔들려도 줄기를 곧게 세우며 아름다운 꽃잎을 피우는 참교육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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