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500억 날린' 유전펀드, 무보 돈 받아 원금 90% 돌려준다
유전 매장량 감소···자산 4000억→1513억 ↓
9개 해외자원 사업 중 4개는 이미 보험금 받아
"세금으로 손실 보전···사업성 철저히 검증해야"
이명박 정부 때 민간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위해 조성된 ‘패러렐 유전펀드’가 10년 간 62.2%(배당금 제외)나 손실을 본 뒤 무역보험공사의 보험금으로 투자 원금의 최대 90%를 보상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개별 펀드 부실을 세금으로 보전하는 사례라며 정부가 앞으로 수익성을 더 철저히 검토해 관련 사업을 보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올해 안으로 무보에서 해외자원개발펀드 손실 보험금을 받고 사업주인 삼성물산의 유전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패러렐 유전펀드의 수익자에게 총 투자 원금 4000억 원의 85~90%를 분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달 무보에 보험금 지급 청구서를 내고 심사를 받고 있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 관계자는 “늦어도 올해 안으로는 보험금을 수령해 수익자에게 원금의 85~90%를 주고 펀드를 청산하려 한다”고 밝혔다.
패러렐 유전펀드는 2013년 2월 무보의 해외자원개발펀드보험에 가입하고 그해 3월 10년 만기로 설정한 상품이다. 정부가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한창 독려하던 2012년부터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육상 유전에 투자해 연 평균 11% 수익을 내겠다고 투자자들에게 홍보했다. 배당소득을 분리 과세한다는 절세 효과까지 부각하면서 펀드 공모 당시 총 4000억 원 모집에 9416억 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판매회사는 NH투자·삼성·한화투자증권이었다.
이 펀드의 순자산은 패러렐 유전의 매장량 감소, 유가 하락 등의 악재가 겹치며 올 3월 말 기준으로 1513억 원까지 쪼그라들었다. 투자자들은 그간 받은 배당금 등을 제외하면 10년 전 4000억 원에서 62.2%를 손해 본 셈이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손실이 불어나 원금조차 돌려줄 수 없게 되자 수익자 동의를 얻어 펀드 만기를 2025년 4월 1일까지 2년 더 연장했다. 그러면서 펀드 손실을 확정해 무보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운용·판매 보수율도 각각 연 0.35%, 0.05%에서 0.15%, 0.01%로 인하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에 따르면 패러렐 유전펀드가 가입한 보험의 최대 책임금액은 2억 5700만 달러(약 3249억 원)로 모집금액 4000억 원의 약 80%에 달한다. 최대 책임금액은 사고 발생 시 보험사가 손해 보상을 위해 지급하기로 한 최고 금액이다. 업계에서는 패러렐 유전펀드의 경우 유전 사업주인 삼성물산이 자산 매각까지 끝낼 경우 최종 보험금은 최대 책임금액의 절반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무보에 낸 보험료는 960만 달러(약 121억 원)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가입한 해외자원개발펀드보험은 2006년 11월 도입돼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부터 활성화됐다. 2007년 1월 한국석유공사의 ‘베트남 15-1 유전’ 사업부터 2013년 5월 포스코의 캐나다 AAMC 철광석 사업까지 총 9개 사업이 보험에 가입했다. 이 가운데 미국 샌드리지 유전 사업 2억 4000만 달러(약 3038억 원)을 비롯해 4개 사업이 이미 총 3억 2230만 달러(약 4082억 원)의 보험금을 받아 손실을 보전했다. 해외자원개발사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중도에 환매할 수 없는 폐쇄형 공모펀드는 해외자원개발펀드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다.
투자 전문가들은 정부가 독려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에 세금 성격의 보험금이 투입되는 격이라며 사업성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패러렐 유전펀드가 해외자원개발펀드보험에 가입하기 직전 무보의 의뢰로 사업성을 검토한 삼정KPMG는 기본 유가를 배럴당 80달러로 가정해 펀드의 연 수익률이 7.5%에 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시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이 목표 수익률로 제시한 11%에 3.5%포인트 모자란 수치였다. 유가 전망도 크게 어긋났다.
김범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자원개발 등 미래 예측이 어렵고 경제 상황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자산의 경우 엄격한 사업성 검증이 필요하다”며 “특히 세금이 지원되는 사업이라면 낙관적인 전망보다는 손실 발생 가능성에 주안점을 두고 보수적으로 보험금액을 책정하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무보의 패러렐 유전펀드 보험금 지급 여력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붙였다. 무보의 보험금 지급 창구인 투자위험보증계정 잔액은 이달 19일 기준 외화 21만 달러(약 2억 7000만 원), 원화 1억 800만 원뿐이다. 올해 안에 투자자 손실을 보전하겠다는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의 계획이 자칫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무보 관계자는 홍정민 의원실을 통해 “계정 잔액이 소진된 건 맞지만 정부가 올해 투자위험보증 예산 1391억 원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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