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버스기사, 숨지기 전에도 "물 찼으니 우회하라" 동료들에 전화

김태원 기자 2023. 7. 20. 10:2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들아 어딜 가느냐…”] 청주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희생된 시내버스 기사의 발인이 엄수된 19일 오전 그의 어머니가 운구차에 실린 관 위 엎어져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위험 직면해서도 다른 동료·시민들 안전 걱정한 듯

떠밀려오는 급류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서도 승객들을 살리고자 창문을 깬 것으로 알려진 청주 747번 버스기사 이모씨(58)가 사고 당일 동료 버스기사들에게 “도로가 잠겼으니 우회하라”고 전화를 건 것으로 밝혀졌다. 위험에 직면해 동료와 다른 시민의 안전을 또 한 번 챙긴 이씨의 모습에 주변인들과 시민은 안타까움이 더욱 짙어졌다.

19일 오전 궁평2지하차도에서 희생된 버스기사 이씨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이 자리에서 고인과 함께 747번 버스를 운행하던 동료 몇몇은 이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조선일보를 통해 전했다.

기사 김모씨(52)는 “이씨가 동료들에게 사고 직전 ‘지하차도 쪽에 물이 찼으니 우회해야 한다’고 전화를 했는데, (마지막으로 통화한 이가) 조금 후에 전화를 다시 걸었더니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매체에 말했다.

청주 버스 747번은 고인이 소속된 운수업체를 비롯해 6개의 운수업체가 함께 운행하는 노선이다.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받은 이는 이씨와 다른 업체 소속이지만 친분이 깊은 사이였다고 알려졌다.

지난 16일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인명 수색과 배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궂은 일 마다 않던 베테랑···공항·역 운행하는 주요 노선 맡아

동료 기사들은 고인이 폭우 속에서도 기존 노선을 우회하면서까지 종점에 가려고 했던 이유도 ‘책임감’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이씨가 몰았던 전기버스 차량은 청주국제공항~오송역 구간을 지난다. 그런데 오송역 인근 전기 충전소에 들러야 다음 운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원래 택시 기사였던 고인은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고 있던 친구 최모씨의 추천으로 10년 전 같은 회사에 입사하게 됐다.

출근 시간이 오전 5시30분인데도 그는 매일 3시면 출근해 사무실 정리를 하고 마당을 쓸었다고 한다. 궂은 일을 마다 않는 성격 덕에 금세 회사에서 인정받았고 몇 년 전에는 전국 단위 승객 안전 최우수 평가도 받았다. 이후 그는 베테랑들만 몬다는 747번 버스의 운전대를 잡게 됐다.

최씨는 "747번 버스는 외지인들을 싣고 청주공항과 오송역 사이를 오가는 노선이라 회사의 얼굴과 같은 버스였다"면서 "그 버스는 그가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그게 죽음으로 이어졌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침수된 도로를 피해 지하차도로 들어갔다고 그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이만큼 승객 안전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걸 알아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했다.

친형 이모씨는 "동생이 아내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 버스에 물이 들어차고 있다며 혹시 모를 작별 인사를 했다더라"면서 "미호천이 넘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다는데 당국이 왜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고인은 책임감도 깊었지만 ‘누구에게나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지인들은 회고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인재”] 19일 오전 11시 충북경찰청 정문 앞에서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가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와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연대 “충북도·청주시·행복청 서로 책임 전가···3곳 모두 중대법 위반” 고발

자신을 35년 지기 친구라고 소개한 김 모씨는 "친구들의 가족도 자기 가족처럼 챙겼던 사람이었다"면서 "명절마다 빠지지 않고 우리 집에 와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고 내가 일이 있어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땐 대신 우리 어머니를 찾아보던 사람"이라며 울먹였다.

또 다른 친구 김모씨는 "사고 당시 친구가 승객들에게 창문을 깨드릴테니 탈출하라고 했다던데, 그 사람은 정말로 승객들이 다 나가는 걸 보고 제일 마지막에 탈출했을 사람이었다"면서 "죽을 걸 알면서도 그러고 있었을 모습이 자꾸 아른거려 가슴이 미어진다"며 애달파했다.

한편 이날 오전 11시 충북경찰청 정문 앞에서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가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와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단체는 이날 오전 충북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책임자에는 사업주뿐 아니라 지자체장도 해당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중이용시설의 관리상의 결함으로 1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면 적용할 수 있고, 터널, 교량 등 시설 관리상의 결함 때문에 1명 이상 사망하면 적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단체는 "청주시는 '도로 통제 권한이 도로 관리 기관인 충북도에 있다'고 하고 충북도는 '매뉴얼상 도로 통제 기준이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있다"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도 임시 제방은 미호강의 계획 홍수위에 맞춰 조성한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어느 한 기관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이들을 고발하려 한다"며 김영환 충북지사와 이범석 청주시장, 이상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 청장에 대한 고발장을 충북경찰청에 제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청주시가 사고가 발생한 궁평2지하차도를 이용하라고 시내버스 회사들에 안내한 것으로 알려진 청주시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시내버스에 탑승했다 숨진 20대 여성의 외삼촌은 "제대로 된 원인 규명과 진상 조사가 필요하며 꼬리자르기식 관련 기관의 책임 전가와 회피는 듣고 싶지 않다"며 "서둘러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 분향소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했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