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된 태국 제3세력 바람…피타, 총리 선출 막혀
헌재도 피타 의원직 정지…전진당 해산 가능성도
탁신계 '프아타이' 어부지리 집권 가능성
'국민 뜻 존중하지 않아" 거리나선 전진당 지지층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40대 기수’ 피타 림짜른랏(42) 전진당 대표를 앞세워 개혁을 꿈꾸던 태국 제3세력의 시도가 좌절됐다. 헌법재판소가 피타 대표의 의원직을 정지한 데 이어 의회도 이번 회기 그의 총리 선출 자격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실망한 민심이 정국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피타는 물론 전진당도 정계서 퇴출 가능성
19일(현지시간) 태국 영자지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이날 태국 의회는 표결을 통해 피타 대표가 이번 회기엔 다시 총리 후보로 나설 수 없다고 결정했다. 원래 이날 회의는 총리 선출을 위한 회의였지만 친(親)군부 의원들이 주동이 돼 피타 대표의 총리 후보 자격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난주 1차 투표에서 이미 총리 선출이 무산된 만큼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피타 대표는 이날 예정된 2차 투표에 나설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관례대로면 하원 다수당 지도자인 피타 대표가 총리가 되는 게 수순이지만, 1차 투표에서 피타 대표는 군부가 지명한 상원의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전진당은 지난 선거에서 징병제·왕실 모독죄 폐지 등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워 군부·왕실과 정면으로 맞섰다.
이날 의회 결정에 앞서 태국 헌법재판소도 선거관리위원회 의견을 받아들여 피타 대표의 의원직을 정지했다. 언론사 주주의 공직선거 출마를 금지한 선거법에 따라 iTV 주식 4만 2000주를 소유하고 있는 피타 대표가 피선거권이 없다는 게 선관위 판단이다. 선관위는 헌재에 피타 대표의 의원직을 박탈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피타 대표 측은 iTV는 이미 2007년 방송 송출을 중단해 언론사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국 헌재는 전진당의 왕실 모독제 폐지 공약이 군주제 전복 시도에 해당하는지 심리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최악의 경우 피타 대표는 물론 전진당 자체가 정계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 태국 헌재는 2020년 전진당의 전신인 신미래당에 해산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왕실·군부 개혁 바라던 지지자 분노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한 엘리트 기업인 출신인 피타 대표는 지난 5월 총선(하원의원 선거)에서 전진당을 원내 1당에서 올려놓는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지난 20년간 태국 정치를 양분해 온 군부와 탁신 친나왓 전(前) 총리 세력에 염증을 느끼던 청년과 도시 지역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그 덕에 20년 넘게 하원 1당을 차지하던 탁신계 정당을 밀어내고 다수당을 거머쥐는 이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헌재와 의회가 잇달아 제동을 걸면서 전진당의 집권은 난망해졌다. 지난주 피타 대표도 “현실적으로 전진당이 내각 구성을 주도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면 2당인 프아타이가 주도하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한 만큼 정권은 프아타이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프아타이는 탁신 전 총리의 딸인 패통탄 친나왓이 이끄는 정당으로 부동산 재벌 출신인 스레타 타위신을 총리 후보로 내세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개혁 열망이 좌절된 전진당 지지자들의 분노다. 이날 전진당 지지자 수백명은 수도 방콕에서 군부와 상원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주도한 소묫 프룩사카는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들이 활보하는 동안 현재는 민주주의로 탄생한 정부를 죽이는 장치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에 참여한 위라시니 사캐오는 “나는 화가 난다. 그들(의원들)은 국민의 뜻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일각에선 시위가 격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차기 내각에 군부가 참여할 경우 전진당 지지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티티난 퐁슈디락 촐랑롱콘대학 교수는 “전진당이 정권에서 배제되면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위가 격화된다면 프아타이가 이끄는 정권이 강경 진압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삼을 것”이라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말했다.
박종화 (bel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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