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안 마시고, 소고기 안 먹고…유럽이 가난해졌다"
인플레이션 · 워라밸 선호 · 증세 압력으로 앞으로도 비관적
美와 경제 격차 벌어져…2035년 일본-에콰도르 격차 수준 예상
[서울=뉴시스]한휘연 인턴 기자 =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쌍끌이한 유럽이 가난해지고 있다. 경제 침체가 이어지며 2035년이면 미국과 유럽 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 격차가 현재 일본과 에콰도르 간 격차 수준으로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인들이 올해 초부터 수십 년 간 경험하지 못한 경제적 침체 상황을 겪으며 "가난해지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과 푸아그라를, 스페인에서는 올리브 오일을, 독일에서는 육류와 우유 소비를 줄이는 등 사치재부터 일상적 식료품 소비까지 전면적인 '소비 감소' 실태가 나타났다.
이는 유럽연합(EU) 대부분의 국가 내에서 진행된 고령화로 전반적인 생산성이 부진한 가운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경제 악화로 인한 정부의 고용주 대상 보조금 지급, 수출주도형 유럽 국가의 소비시장인 중국 경제의 느린 회복과 함께 인플레이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美와 '경제 쌍두마차' 이끌던 EU…격차 더 벌어질 것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9년 말부터 지금까지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더라도 유로존 20개국의 민간 소비량이 1%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이는 같은 기간 미국이 강력한 노동 시장과 소득 증가를 기반으로 9% 증가한 것에 대비된다.
현재 유럽은 전 세계 소비 지출의 약 18%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은 28%에 달한다. 15년 전 유럽과 미국이 전 세계 소비량의 각각 25% 내외를 가져갔던 것에 비하면 극심한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소비를 떠받치는 임금 측면이다. 2019년 이후 현재까지 인플레이션과 구매력을 조정한 뒤 실질임금을 분석한 결과 독일은 약 3%,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약 3.5%, 그리스는 6% 감소했다. 반면 미국은 같은 기간 내 실질 임금이 약 6% 증가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데이터에 따르면 유로존이 달러 기준으로 최근 15년 간 약 6% 성장한 반면, 미국은 82% 성장했다.
유럽국제정치센터가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 미국 아이다호와 미시시피를 제외한 모든 미국 주보다 EU 국가가 1인당 평균적으로 더 '가난해졌다'. 이들은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5년에는 미국과 EU의 1인당 GDP 격차가 현재 일본과 에콰도르의 격차만큼 커지리라 전망했다.
경제 떠받치던 중산층조차 "남은 음식 싸게…소 대신 닭" 소비 전환
WSJ에 따르면 유럽의 부유한 도시 중 하나인 벨기에 브뤼셀에서조차 "물가가 너무 올라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충당하려면 부업이 필수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유럽 내에서는 식료품비를 줄이기 위한 시민들의 각고의 노력이 드러나고 있다.
소매점 등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수거해 싼 값에 재판매하는 사업이 호황을 누렸다.
2015년 덴마크에서 설립된 레스토랑 등에서 남은 음식을 싸게 판매하는 '투굿투고(TooGoodToGo)'는 현재 유럽 전역에서 7600만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설립 당시보다 등록 사용자 수가 3배 증가했다.
유럽 소비자들은 고급 식료품에 지불하는 비용도 줄이고 있다.
독일에서는 2022년 1인당 육류소비량이 52㎏를 기록, 전년 대비 8%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1989년 통계 이래 최소치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 감소 추세가 건강한 식습관이나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 외에도 최근 몇 달간 최대 30%에 가깝게 급등한 가격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독일연방농업정보센터는 독일 시민들이 소고기에서 비교적 값이 싼 닭고기 등의 가금류로 육류 소비를 전환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WSJ, "EU 인플레이션·워라밸 선호 경향·증세 압력으로 전망 비관적"
저성장과 금리 상승으로 인해 유럽 복지 국가들의 부담이 증가한 가운데,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국가 보조금이 무색해졌다고 WSJ은 설명했다.
유럽의 빈곤화가 진행되며 유럽 전역에서 노동조합이 다시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WSJ은 주목했다. 그러나 유럽의 노동조합은 인력 부족이 심화되는 가운데에서도 높은 임금보다 '워라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독일에서는 금속노조가 임금 인상 대신 주 4일 근무를 요구하거나, 보건산업종사자들이 풀타임 대신 주당 30시간 근무를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WSJ은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유럽이 지속되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임금 상승 압력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거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조건 속에서 국방비 지출이 늘어나 이미 높은 비율을 자랑하는 유럽 국가들에서 추가 증세 압력 또한 커지고 있어 소비자 부담이 커질 것이라며 어두운 전망을 내놨다.
☞공감언론 뉴시스 xaya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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