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몰랐다” 지하차도·해병대 참사에 나온 똑 같은 변명 [핫이슈]

김인수 기자(ecokis@mk.co.kr) 2023. 7. 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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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조끼 없이 수색작업하던
스무살 해병대 군인의 죽음
군의 “이럴 줄 몰랐다” 변명은
궁평2지하차도 참사와 판박이
‘설마’ 하며 운에 의존해서는
참사 재발 못 막는다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 중 숨진 해병 장병을 태운 헬기가 20일 오전 0시 47분께 전우들의 경례를 받으며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무살 해병대 군인이 19일 숨졌다. 그는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 중에 급류에 휩쓸렸다고 한다. 그 후 14간 만에 싸늘해진 몸으로 부모 앞에 돌아와야 했다.

군의 변명은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궁평2지하차도 참사 때와 흡사하다. 군은 “하천 지반이 갑자기 붕괴할 줄 몰랐다”고 했다. 지하차도 참사 때에도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충청북도가 비슷한 변명을 했다. 교통통제를 하지 않은 까닭에 대해 “지하차도 중심 부분에 물이 50㎝ 정도 차올라야 교통 통제를 하는데 미호강 제방 붕괴로 순식간에 물이 차올랐다”고 했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가 그렇게 빠를 줄 몰랐다는 뜻이다.

그날 해병대원들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하천으로 들어갔다. 군인끼리 맞잡은 손에만 의지해야 했다. 해병대는 전날 실종자 수색을 위해 상륙돌격장갑차를 투입했지만 빠른 유속 때문에 5분 만에 철수해 놓고서는 군인을 맨몸으로 들여보낸 것이다. 결국 소중한 생명 하나를 잃고 말았다.

사람 목숨이 이렇게 가벼울 수는 없다. 목숨이 달린 일이라면 사고가 날 확률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실종자 수색을 말라는 게 아니다. 목숨을 잃을 작은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랬다면 구명조끼를 입혀 물에 들여보냈을 것이다.

사람 목숨을 얘기할 때 “그럴 줄 몰랐다”라는 말은 너무 가볍다. 무책임하다. 물론 100% 예측 못 할 천재지변도 있다. 하지만 실종 수색 중에 하천 지반이 무너지고 급류가 생길 가능성은 천재지변이 아니다. 더욱이 수색 장소는 폭우가 내린 곳이다. 지반이 약해졌을 가능성은 왜 생각 못 하나. 군이 작전을 하려면 사전에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해야 한다는 건 상식인데, 그런 조치를 충분히 했는지도 의문이다.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은 과하다 싶은 정도로 대비하는 게 정상이다. “예년에 괜찮았으니 올해도 괜찮겠지”, “지금까지 구명조끼를 입지 않고 수색해도 사고가 없었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궁평2지하차도도 마찬가지다. 금강홍수통제소에서 교통 통제를 요청했고, 위험하다는 112 신고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50cm 이상 물이 차야 교통통제를 한다는 매뉴얼에만 집착했다. 안전에 관한 한 ‘과한 게 정상’이라는 인식이 뿌리 박혀 있었다면 이렇게 했을까 싶다.

우리 사회도 이제 변해야 한다. “설마, 사고가 날 리 없을 거야”라면서 운에 의존하는 마인드로는 사고를 못 막는다. 폭우 피해만 그런 게 아니다. 산업 현장도 마찬가지다. 과한 조치를 한 직원에게는 칭찬하고 포상해야 한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라는 말로 탓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과한 조치에는 반드시 불편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불편 덕분에 누군가의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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