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원조 급감하고, 여성탄압 심화… 우크라에 가린 ‘阿·중동의 눈물’[Global Focus]
아프리카 ‘빈곤·치안 악화’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 원조
지난해 8% 줄어 290억달러
바그너 용병들 속속 떠나며
중앙阿·시리아 등 안보공백
아프간 탈레반 ‘여성 억압’
재집권 뒤 미용실 폐쇄하고
여학생 대입 응시 제한 조치
NGO·유엔 근무도 막는 등
인종차별 같은 성차별 정책
미얀마 군부 ‘강압적 통치’
민주화 인사 잇단 연락 두절
생활고에 ‘잡범’전락하기도
로힝야족 사이클론 피해에도
군부, 구호물자 전달 등 막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미국과 서방 등 주요 국가들의 관심과 지원이 우크라이나에 집중되면서 빈곤과 차별 등으로 국제사회의 도움이 필요한 국가들이 잊혔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이후 군정의 엄혹한 통치하에 다시 민주화에서 멀어진 미얀마와 2021년 8월 무장단체 탈레반이 재장악한 뒤 강력히 여성을 탄압하는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전 세계의 빈국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아프리카 등이 국제사회의 감시나 지원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24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부금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 몰리면서 아프가니스탄, 예멘, 콩고, 아이티 등 오랜 기간 지원을 받아온 국가들을 위한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겼다”고 전했다.
◇아프리카 치안 악화하고 국제사회 지원 줄어 =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지역은 아프리카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미국 및 유럽 등 서방의 모든 전력이 몰리면서 기존 빈국에 대한 지원이 확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에 대한 양자 원조(국가 간 직접 원조)는 2022년에 8% 감소한 290억 달러였다. 반면 2022년 전 세계 양자 간 원조는 15% 증가했는데, 증가액 대부분은 우크라이나로 직접 전달되는 160억 달러와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을 위해 공여국에서 본국으로 지출되는 290억 달러였다. 유엔아프리카경제위원회(UNECA)의 하난 몰시 위원장은 이코노미스트에 “우리는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와 그리스를 위해 자원을 대규모로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을 봤다”며 “아프리카를 위한 해결책은 같은 방식으로 찾을 수 없으며, 이는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프리카는 지난달 무장 반란 사태를 일으킨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 바그너 그룹의 영향도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시리아에서 철수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WSJ는 현지 활동가와 주민들의 말을 종합해 지난 5일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 바그너 그룹 기지 세 곳에서 8대의 장갑 차량이 출발하는 등 100~200명의 용병이 떠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이후 바그너 그룹과 계약한 러시아 일류신 항공기가 수도 방기 공항에서 러시아를 향해 출발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여성 인권이 사라진 아프가니스탄 = 지난 2021년 8월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이 재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상황도 지속적으로 악화하고 있지만, 세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집권 탈레반이 7월 초 여성들이 이용하는 미용실 폐쇄 조치를 내렸다. BBC에 따르면 도덕부 대변인은 이 조치를 통보받은 미용실은 2일부터 한 달 안에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내 미용실 수천 곳이 문을 닫게 된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장악 후 대부분의 공립 중·고등학교에서 여학생 등교를 금지하고 대학 입학시험에서 여성이 응시할 수 있는 전공을 간호학, 조산학 등으로 한정했다. 또 남성 보호자와의 동행 없이는 여성이 여행은 물론 공원과 체육관 등 공공장소 출입도 못하도록 제한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자국 여성이 국내외 비정부기구(NGO)에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지난 4월에는 금지 조치를 유엔 소속 여직원에게도 확대 적용해 유엔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탈레반의 ‘여성 배제 정책’에 유엔은 탈레반이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시행했던 인종 차별과 비견되는 성차별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탈레반이 이슬람 율법을 이유로 자국 여성들을 다르게 대우하는데 그 정도가 과거 남아공이 보인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비견된다는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공이 40년 넘게 시행한 인종차별 정책이다. 리처드 베넷 유엔 아프간 인권 보고관은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여성에 대한 제도화된 차별은 탈레반 통치 이념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민주화 멀어지고 소수민족 탄압 계속되는 미얀마 =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미얀마의 상황도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는 사이 더욱 참혹해지고 있다. 군부의 통제로 아프가니스탄·아프리카와는 달리 현지 상황이 제대로 보도되지도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일보가 그동안 취재를 위해 접촉해왔던 민주화 인사 중 상당수는 연락이 두절됐다.
최영준 한·미얀마협회 부회장은 19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생활고가 심해지면서 민주주의에 앞장서왔던 민주화 인사들의 구심점이 사라지고 상황이 바뀔 거라는 기대도 없어졌다”며 “군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투쟁하기 위해 교수들은 민간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고 밝혔다.
특히 미얀마에 대한 국제사회 지원이 줄어들고, 그나마 적은 지원도 군부 정권의 방해로 거의 끊기면서 일자리를 잃은 민주화 인사들이 배가 고파 생필품을 훔치거나 구걸을 하다 생활 잡범으로 전락하고 있다. 최 교수는 “군부하고 손잡는 걸 거부하면 먹고살 길이 막히니 하층민으로 전락해 절도·폭행 혐의 등으로 제약을 받는 소시민들이 늘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나섰던 이들은 대부분 한창 일해야 할 20·30대들인데 투자하던 해외 기업들도 다 빠져나가 버리니 이들의 현실이 비참해졌다”고 했다.
또한 지난 5월 초대형 사이클론 ‘모카’의 직격탄을 맞은 미얀마 라카인주에 집단 거주 중인 이슬람계 소수민족 로힝야족 역시 군부의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라카인주에는 수십만 명의 로힝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수십 년간 이어진 민족갈등과 군부의 학살을 피해 난민 수용소에 거주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탓에 사이클론 피해가 더 커졌지만, 미얀마 군부는 재난 지역 접근을 차단하고, 구호물자 전달을 막으며 로힝야족 탄압에 앞장서고 있어 정확한 피해 규모 집계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얀마 민주진영 측은 라카인주에서만 로힝야족 400여 명, 인근인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로힝야족 난민촌에서도 수십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복구 및 지원은 요원한 상황이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 국제적십자위 ‘인플레 타격’… 직원 10% 줄이고 26개 지부 구조조정
기부금 모금 계속 줄어
인도적 지원망 ‘초비상’
사업 예산 27억유로 중
올해 4억유로 줄이기로
국제적십자사 산하 기구이자 세계 최대 국제구호단체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대규모 예산 및 인원 감축 그리고 지부 폐쇄를 단행했다. 이 때문에 다수 빈곤국이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해 글로벌 인도적 지원망에 비상이 걸렸다.
ICRC는 최근 올해 기존 사업 예산 27억9000만 유로(약 3조9640억 원) 중 4억4000만 유로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전체 직원 10%(1800명)를 해고하고 전 세계 350개 지부 중 26개 지부의 운영을 중단하거나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미르자나 스폴자릭 ICRC 위원장은 내년에도 기부 모금이 계속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재정난 원인은 에너지, 식량 등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실제 지출이 예년보다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이 8.7%로 고공 행진한 반면, 기부금 모금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세계 식량 가격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난해 사상 최고로 치솟았다.
ICRC의 지원 축소에 따라 그동안 국제사회 지원에 의존해 온 빈곤국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45개국이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하며, 현지 식량 가격이 높은 곳에서는 걱정스러운 수준의 기아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경제규모가 큰 국가들이 의무적으로 ICRC에 기부하는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프랑스 비정부기구(NGO)인 ACF의 피에르 미켈레티 회장은 “문제의 핵심은 기부금의 80%를 10개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국, 인도, 브라질 등과 같이 큰 나라들은 거의 자금을 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현욱 기자 dlgus300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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