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기후특사 중국 방문 성과 빈손…기록적인 폭염에도 신경전만 벌인 온실가스 배출 1·2위 국가들
지구 평균 기온이 역사상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등 세계 곳곳이 폭염으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 1·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이 기후위기 문제 해결에서 뜻을 모으지 못했다.
3박4일의 방중 일정을 마무리한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는 중국에 기후위기 문제에서라도 우선 힘을 합치자는 제안을 내놨으나 중국은 반도체 규제와 대만 문제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런 와중에도 회담이 열린 베이징의 낮 최고 기온은 36도를 기록하면서 최다 고온 일수 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방중 마지막 날인 19일 케리 특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한정 국가부주석을 만나 “기후변화 문제는 외교 문제와 별개로 다뤄야 한다”며 기후문제 공동 해결을 언급했다. 하지만 한 부주석은 “발리 정상회담 합의 이행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중국 측이 언급하는 발리 정상회담 합의에는 미국이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고, 중국 체제 변경을 추구하지 않으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케리 특사가 기후 문제에서라도 힘을 합치자고 제시했지만 중국 측이 외교 문제 해결을 앞세우며 사실상 거절한 것이다
케리 특사와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도 성사되지 못했다. 시 주석은 케리 특사를 만나는 대신 지난 17~18일 열린 생태 및 환경보호에 관한 전국회의에 참석해 “기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경로와 수단, 그리고 속도와 강도는 다른 사람들의 지시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국가)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정지천문매체 폴리티코는 “케리 특사가 ‘솔직한 대화가 오갔다’면서 진전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며 공동성명도 채택하지 않은 채 일정이 끝났다고 짚었다.
이는 2020년 미·중이 각각 기후특사를 임명했을 때의 기대감을 사그라들게 만들고 있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처음 방중한 미 고위급 인사가 케리 특사였을 정도로 양국은 당시만하더라도 기후위기 협력에 한 목소리를 냈다. 2021년 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공동 합의 발표에 성공하며 온실가스 배출 1·2위 국가인 중국과 미국의 협력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미·중 관계가 급랭하면서 기후위기 논의도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다. 중국이 더이상 미국과 공동의 목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의 경제적 갈등은 한층 더 심화됐고, 중국은 경제 회복 속도까지 더딘 상황이라 기후위기 대처는 뒷전으로 밀렸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다시 석탄 생산량 증가에 나섰다. 기후 행동 추적기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중국의 온실 가스 배출량은 약 12% 증가했다.
이런 와중에 강한 고기압이 고온의 공기를 가두는 열돔 현상(heat dome)이 이어지며 전 세계 곳곳이 초고온 현상에 신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예측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올 여름 ‘통제 불가능’한 기온 이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는 다가올 대재앙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최근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싼바오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국립공원의 기온은 각각 52도, 53도로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지난 16일 이란 페르시아만 기온은 65도까지 치솟았고, 이탈리아 로마는 42도로 역대 최고 기온을 갱신한 가운데 폭염관련 응급실 환자가 25% 이상 급증하고 있다.
케리 특사가 중국을 방문한 기간, 회담이 열린 베이징은 최고 기온이 35도 이상을 기록한 날이 벌써 28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는 기온 관측 이래 사상 최장 기록으로 이전에 베이징의 연간 최다 고온일수는 2000년 기록했던 26일이었다.
다만 케리 특사의 이번 방중을 둘러싸고 전문가들은 대화가 시작했다는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미국 싱크탱크 아시아소사이어티의 톰 우드루프 선임 연구원도 케리 특사의 방중에 대해 “미중 관계의 안정화를 위한 작은 승리”라고 평가했다. 당국이 기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케리 장관을 중국에 초청한 것은 미국과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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