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년·대성동 이야기] ③ 땅 못 갖고 남북긴장땐 일 못해

노승혁 2023. 7. 20.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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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 마을은 남북 관계의 흐름에 따라 평온하기도 하고 들썩거리기도 한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됐던 1970년대 초에 농사일을 돕던 일꾼이 북한군에 납치된 일이 있었고, 1997년에도 마을 야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주민이 납치됐다가 닷새 만에 풀려났다.

김동구 대성동 마을 이장은 "주민 모두의 소망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남북이 통일돼 다른 농촌 마을처럼 야간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내 땅에서 자유롭게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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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불편하지만 고향을 떠날 수도 없고"
고령화 갈수록 심각…"여기선 65살이 새색시"

(파주=연합뉴스) 노승혁 기자 = 대성동 마을은 남북 관계의 흐름에 따라 평온하기도 하고 들썩거리기도 한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됐던 1970년대 초에 농사일을 돕던 일꾼이 북한군에 납치된 일이 있었고, 1997년에도 마을 야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주민이 납치됐다가 닷새 만에 풀려났다.

2002년엔 마을에서 훈련 중이던 JSA 대대 소속 미군 병사가 오발 사고를 내 마을 전체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마주 선 남북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마을 주민들은 평화와 통일을 누구보다 갈망하고, 남북 관계가 개선되기를 원한다.

대성동 주민 김광유(43) 씨는 "북한이 미사일만 발사해도 생업을 중단한 채 대피하거나 집에서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당연히 최근 북한의 위협과 무력시위는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김씨는 "2012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마을에 방공호(대피소)가 만들어졌다"면서 "2013년 탈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응해 북한이 임진각에 타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대피소로 피신하는 소동을 벌였다. 일부는 외부로 빠져나갔다"고 전했다.

이어 "북한을 지척에 둔 이곳은 살벌한 전쟁 분위기가 정적에 감춰져 있을 뿐"이라며 "남북 대치 상황에서는 항상 긴장감을 갖고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북한 도발에 대한 걱정 없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주민들의 꿈"이라며 남북 관계가 호전되기를 기원했다.

대성동 마을 주민 대부분은 벼농사를 짓는다. 경작면적은 전체 5.5㎢, 농가당 10.55㏊에 달한다.

연 소득은 평균 5천만∼6천500만원으로 통일촌이나 해마루촌 등 민간인통제선 안에 있는 다른 마을의 1.5배 수준이다.

하지만 미수복지역이어서 주민들은 농사지을 수 있는 경작권만 가질 뿐 땅을 소유할 수는 없다.

대성동 모내기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 마을로 시집와 40년째 살고 있는 최순식 생활개선회장은 "남북 관계가 좋아져 땅문서를 가진 사람이 불쑥 찾아와 '땅을 내놓아라' 하면 평생 일군 터전을 내줄 수밖에 없다"면서 "주민들이 70년 동안 살면서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농사를 지어왔는데 권리조차 행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주에 제약이 많다 보니 대성동 마을의 노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김은순 대성동마을 부녀회장은 "우리 마을에서는 65살이 새색시로 불린다"며 "그만큼 고령화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45년째 이 마을에 살면서 장단면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조영숙 회장도 "마을의 고령화로 이제는 농사짓는 게 너무 힘들다"면서 "인근 통일촌은 농번기 때 외부 인력이라도 지원받지만, 우리 마을은 인력 지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농번기에 일꾼을 쓸 수 없으니 값비싼 농기계를 사서 남편과 둘이 일하고 있다. 농기계 구입비는 몇 년 동안 갚아 나가야 한다"면서 정부나 파주시에 지원책을 요청했다.

대성동마을의 못자리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군인이 동행해야만 영농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대성동 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다. 2010년 천안함 피격,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이 있었을 때는 군에 비상이 걸리는 바람에 농사일을 할 수가 없었다.

김동구 대성동 마을 이장은 "주민 모두의 소망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남북이 통일돼 다른 농촌 마을처럼 야간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내 땅에서 자유롭게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든 고향을 버리고 떠날 수도 없고, 좋은 시절이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미군의 대성동마을 일손돕기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ns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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