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국 축구와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의 세계화
"득점왕은 어릴 때부터 꿈꿔온 일인데 말 그대로 내 손안에 있다. 지금 정말 감격스럽다."
이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2022년 5월 23일 영국 프로 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시즌 22·23호 골을 넣고 득점왕에 올랐을 때 한 말이다. EPL뿐만 아니라 유럽 5대 빅리그(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에서 아시아 선수가 득점왕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득점왕의 쾌거는 '잔디와 기후'의 연관성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초록색을 유지하는 기간이 길어 사계절 잔디라는 애칭이 있는 '한지형 잔디'는 축구, 골프, 테니스와 같이 넓은 경기장에 많이 쓰인다. 연중 흐리고 비가 내리는 날이 잦은 영국은 이러한 한지형 잔디가 자라는 데 적합해 천연 잔디밭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축구 경기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조경이나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난지형 잔디'인데, 초록색을 유지하는 기간이 짧고 깎았을 때 질감이 억세 축구 경기장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처럼 한국은 축구장에 최적화된 잔디가 사계절 자랄 수 있는 기후적 조건이 아닐뿐더러 축구 인프라가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인 편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출신의 선수가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에 올랐다는 사실은 엄청난 성과임이 분명하다. 그 결실의 뒤편에는 어떤 요소가 작용했을까? 해답은 불모의 환경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었던 선수 개인의 뛰어난 재능과 노력, 그리고 여기에 우리나라 국민의 끊임없는 지지와 관심이 더해진 결과라 생각한다.
이처럼 열세인 환경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한 사례를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상 분야에서는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이하 한국형모델) 개발 성공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수치예보모델은 현재의 날씨 상태로부터 날씨 변화를 지배하는 역학 및 물리방정식를 이용하여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이다. 현대 기상예측에 중요한 요소인 수치예보모델은 그야말로 각종 물리법칙과 수학적 방정식, 컴퓨터 기술 등의 과학기술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결정체이다. 그래서 그동안 수치예보모델 분야의 발전은 다양한 분야의 과학기술이 발달한 영국을 포함한 유럽, 미국 등 과학기술 선진국이 주도해 왔다.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기상청 전지구 수치예보모델(1997년), 영국기상청 통합모델(2010년)과 같은 외국의 수치예보모델을 도입하여 날씨 예보에 사용해 왔다. 그러나 외국 모델들은 한반도의 지형적 특성과 기후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기상청은 2011년부터 9년 동안 한국형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수치예보모델 분야에서 다소 후발주자였음에도 모델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2020년 4월에 정식 운영하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자체 수치예보모델을 보유한 국가가 되었으며, 정확도에 영향을 주는 복사, 강수, 난류 등 물리적 과정을 자체적으로 개발한 한국형모델은 그 독자성을 높게 평가받았다.
한국형모델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모델이기 때문에 문제점 발견 시 수정·보완이 가능하고, 예보관의 의견을 반영해 우리나라의 기상·기후와 환경적인 특성에 맞는 모델로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형모델은 매일 중단 없이 운영되며, 그 예측 결과는 국민뿐만 아니라 재해 예방 관련 기관에 실시간으로 제공되어 해양기상, 항공기상, 황사 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또한 한국형모델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기상청은 지난해부터 미국, 영국 등 기상 분야 선도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세계기상기구(WMO) 수치예측 정보 공유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한국형모델의 예측자료를 전 세계와 공유하고 있으며, 한?아프리카 경제 협력회의 및 WMO 위험기상 예측프로그램을 통해 36개국, 652개 도시에 바람 정보 등 11종에 이르는 하루 3만여 장의 수치일기도를 직접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날씨 예측정보가 세계 각국에서 활용됨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은 기상 분야를 선도하는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형모델은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후발주자이지만,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으며 앞으로 더욱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 기상청은 향후 더욱 상세한 날씨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정교한 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하여 집중호우와 같은 위험기상뿐만 아니라 미래기상까지 대비할 계획이다. 그리고 한국형모델에서 생산된 예측정보에 대한 세계 각국의 활용이 더욱 확대되어, 기상 분야에서 새로운 한류의 물결이 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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