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 "'이로운 사기', 불친절하지만 매력 있는 모험" [인터뷰]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웃으며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 가운데 등장한 '이로운 사기'. 사회적 연대에 대한 메시지를 다소 복잡한 서사와 낯선 방법으로 담아낸 드라마다. 어찌보면 조금은 불친절한 것만 같은 '이로운' 모험에, 기꺼이 연대한 배우 천우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8일 종영한 tvN 월화드라마 '이로운 사기'(극본 한우주·연출 이수현)는 공감불능 사기꾼 이로움(천우희)과 과공감 변호사 한무영(김동욱),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절대악을 향한 복수극이자 짜릿한 공조 사기극을 담은 작품이다.
마지막 회차가 방송되기 전 만난 천우희는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10개월 동안 촬영한 만큼 엄청 잘 해내고 싶었는데 나름 잘 마무리한 것 같아서 만족스럽기도 하다"라며 시원섭섭하단 표정을 지었다.
여느 배우들이 그렇듯, 자기만족에 있어 아쉬움은 천우희에게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아쉬움'이야말로 다음 작품을 향한 동력이 된다고 말한 천우희는 "스스로에게 좀 많이 가혹한 편이다. 연기적으로 좀 더 완성되고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지점을 줄여나가고 싶다. 외부적으로 감독님도 다들 괜찮다고 해주셨지만, 저만 아는 그리고 저만의 목표치 그리고 제가 만들고 싶은 이상향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거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로운 사기'는 연기자가 카메라를 보며 시청자에게 이야기하는 '방백' 연출로도 이목을 끌었다. 극 중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서 일반적인 내레이션 대신 이로움(천우희)의 방백이 이어져 시청자 흥미를 유발했던 것. 물론 처음 하는 작업이라 낯설었다는 천우희는 "작품이 '사기극'이라 꼭 필요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한무영의 경우 심리나 정서 상태를 모재인(박소진)에게 털어놓음으로써 시청자에게 전달되는 거고, 저는 로움이의 사기 계획과 의도 등을 전달해야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제삼자의 '시선'을 보며 연기한 것은 처음이라, 카메라와 눈이 마주칠 때면 (익숙하지 않아) '실수했나?' 멈칫하게 될 때가 있었다. 결국 시청자로 하여금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동조할 수 있게 하는 효과적인 역할이었다"면서 "카메라가 아니라 타인에게 설명하듯 연기해야겠다 생각했다. 조금씩 익숙해지긴 하더라"고 털어놓았다.
"시청자들도 처음엔 어색해하시다가 '방백을 기다리게 된다', '천우희가 카메라를 보는 순간 짜릿해'라는 반응을 보고 성공했구나 싶었죠.(웃음)"
카메라를 보면서 연기하는 것은 배우에게 있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본래 방백은 무대 위 배우와 관객의 암묵적 약속인, 연극에서 사용하는 기법이다. 카메라 건너편 시청자에게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해 파워풀한 무대 매너를 뽐내는 가수들과 달리, 배우들은 의식적으로 카메라와 눈맞춤을 피한다. 카메라를 대하는 모습만 봐도 가수와 배우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가수에겐 익숙하지만, 배우에겐 그간의 습관을 내려놔야 하는 순간이었다.
학창 시절 연극을 했던 천우희지만, 연극 무대 위와 카메라 앞 방백은 또 달랐다고. 그는 "연극 무대에서는 관객과 약속인데 카메라 앞에서 하려니 낯설었다"면서 "사실 제가 연기할 때 좋은 점은 제 자신을 잊고 연기할 때다. 다른 사람으로 분해서 연기하기 때문에 저에게 오는 시선을 개의치 않는 편인데, 카메라를 보는 순간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웃음) '이로움'이 아니라 '천우희'로 돌아오는 거 같은 느낌이 들 때 있어서 순간 현실로 돌아오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천우희는 '이로운 사기'를 위해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했다. 한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이 까다롭진 않았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천우희에게 있어 '즐거운 역할 놀이'였다. "한 작품을 하다 보면 그 인물을 이 사람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섬세하게 접근하는 편인데, 조금은 가볍고 즐겁게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연기적으로나 외적인 측면으로나 만들어가는 것에 있어 꽤나 즐거웠던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외적인 변화들이 한 번도 보여드리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갈증을 풀 수 있는 계기? 였다고 해야 할 거 같다. 연기할 때도, 역할을 만들어갈 때도 마치 인형놀이처럼 재미있게 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신은 천우희의 연기 세계에도 작은 영향을 미친 듯했다. "제가 연기적으로 잘할 수 있는 부분은 서정적인 연기라 생각했어요. 감정연기나 깊은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끌렸고 제 연기의 주된 부분이었는데, 외적인 변신도 도전해 보니 나름의 재미와 성취감이 있더라고요. 앞으로는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에요.(웃음)"
'이로운 사기'는 배우들의 깊이 있는 열연만 아니라 앞서 언급됐던 방백 그리고 화려한 화면 전환, 장면 분위기까지 담아내는 카메라 구도, 긴장감을 높이는 조명 등 특색있는 연출로도 눈길을 끌었다. 기존의 한국 드라마 보다 영화에 가깝다 느낄 정도였는데, 배우들에게도 꽤나 재미있는 작업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는 "감독님, 촬영팀, 조명팀이 시퀀스마다 어떻게 하면 시청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일까 엄청 구상을 많이 하셨다. 저는 거기에 흠뻑 임했을 뿐인 거 같다. 제 주변으로 빠르게 시간이 흐르는 카지노 신에서 사용된 장비도 꽤나 비싼 걸로 안다.(웃음) 그 장면을 위해 굉장히 많이 준비하셨다. 그런 노력과 시도들이 저도 좋았다. '이로운 사기'라는 작품이 어떻게 보면 대중적으로, 편하게만 흘러가는 서사나 구조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는 것 자체로도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그런 실험, 모험이 오히려 큰 매력이 되지 않았나 싶다"라고 작업 소감을 밝혔다.
결말은 마음에 들었냐는 질문에, 천우희는 "'이로운 사기'의 메시지는 처음부터 한 곳을 향해간다. 권선징악과 우리가 말하는 연대와 공감이 서로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한결같이 얘길 했다고 생각한다. 그걸 위해 서사를 쌓아왔다. 결말에 대해서는 확실히 맘에 든다"라고 답했다.
작품에서는 한무영의 입을 빌려 "이로움의 어린 시절에 좋은 어른이 있었다면..."을 계속해 언급한다. '법의 보호' 혹은 '사회의 보호'를 받았다면 한 사람의 미래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고. 천우희는 "이로움 같은 안티히어로가 사랑받는 이유는 법이 국민을 지키지 못한다는 무력감에서 비롯돼, 이러한 허구적 이야기에서 오는 통쾌함이 있어서 그렇다 생각한다. 여타 사적 복수극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똑같다. 정말 법이 필요한 때 법에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극 중 무영이와 로움은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지만 서로 구원이 되기도 하고 얽히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가 되고 공감을 하는 모습이, '이로운 사기'가 한 번씩 던지는 화두라 생각한다"면서 "나 역시 누군가에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좀 더 느껴졌다"라고 덧붙였다.
"'이로운 사기'가 대중적인 구조가 아니라 누군가는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우리 작품만의 독특함을 잃지 않아서 저는 좋아요. 예전엔 시청률이 굉장히 중요했지만 지금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매일 본방송을 시청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잖아요. '멜로와 체질'도 1%대였지만 지금도 '제 인생 드라마예요'란 말을 들어요. '이로운 사기' 또한 재발견되는 시기가 있을 거 같아요. 생명력이 긴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저 스스로는 생각해요."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
Copyright © 스포츠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