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 외교의 전환점이 된 대통령의 우크라 방문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 2023. 7.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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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외교, 약소국 정체성·피해의식 벗어나
유럽과 동아시아 안보, 서로 연결돼있어
재건 참여 위해서라도 지원 확대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이르핀 민가 폭격 현장을 방문해 주변을 살펴 보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리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라도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면 신뢰받지 못한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의 과감한 우크라이나 전격방문은 한국이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자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나라라는 걸 보여주었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 국민들에게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 용기를 가지고 힘을 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고 이를 지켜보는 세계 각국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하는 대한민국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대통령의 우크라 방문은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국격을 높인 한국외교사의 중대 사건이다.

개도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대통령이 자신의 살길부터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대통령은 죽음을 겁낼 권리가 없다”면 포탄이 떨어지는 속에서 국민을 지켜오고 있다. 이 영웅에게 윤 대통령은 “생즉사 사즉생(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하면 산다)”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명구로 화답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강력한 연대의 ‘우크라이나 평화연대 이니셔티브’를 천명했다. “생즉사 사즉생”은 12척의 배로 200척이 넘는 왜군을 격파해 망국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의 결사항전 정신이다. 유럽과 러시아, 한반도 주변 4대강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파란만장한 약소국 설움의 역사를 공통으로 가진 두 나라 정상이 위로하며 손을 맞잡은 감동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보편적인 가치와 원칙에 반할 때, 노(No)라고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가치외교가 아니다. 대통령의 방문은 러시아를 적대국으로 만드는 사건이 아니라,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선진국형 외교를 처음으로 보여준 한국 외교의 전환점이다. 오랫동안 한국외교의 비상을 막은 약소국 정체성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행동한 것이다. 대통령의 방문은 우크라 지원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행동으로 보여준 가치외교의 상징이며,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의 실천이다. 그것은 6·25전쟁 때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국 젊은이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파병한 16개국의 가치외교에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다. 신 냉전 체제 속에서 우리가 서방 민주주의 동맹 편에 서는 것은 명분 뿐 만아니라 우리의 안보강화와 전후재건참여라는 측면에서도 타당한 선택이다. 겉으론 가치외교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실제로는 국익외교인 것이다.

우크라 전쟁이 먼 남의 나라 일이라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그런 시각은 G7수준의 국가에 걸맞지 않다. G7 국가들이 다루는 이슈의 대부분은 우크라 전쟁처럼 남의 나라 일이거나, 에너지·식량위기처럼 세계적인 현안들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넒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안보 불가분의 원칙에 따라 유럽의 안보와 동아시아의 안보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러시아의 승리로 고무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동아시아의 안보가 위태로워진다. 금년 3월 기시다 후미오 일 총리의 키이우 방문을 마지막으로 G7의 모든 정상이 우크라를 방문한 이 시점에 윤 대통령의 방문은 G7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인 것이다. 또한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최초의 한국 대통령이 되었다.

윤 대통령의 방문은 우크라 재건사업에의 우리 기업들의 참여를 위한 투자가 될 것이다. 전쟁 중인 나라에 대한 기여와 종전 후 그 나라 재건사업에의 참여도가 서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윤대통령이 발표한 ‘우크라 평화연대 이니셔티브’는 우리기업의 우크라 재건사업 참여를 촉진시킬 발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대 우크라 지원이 국력에 비추어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우리기업의 재건 참여확대를 위해서라도 지원을 확대해나가야 한다.

금년 5월 한국을 방문한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인터뷰에서 “포격으로 공격당한 헤르손역 기차는 멈추지 않았다. 단지 14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포격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헤르손 기차처럼 살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전쟁으로 가족이 죽고, 집이 파괴되는 절망 속에서도 우크라 국민은 멈추지 않고 달리는 헤르손 기차처럼 꿋꿋이 일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민간인 학살지인 부차와 이르핀을 방문해 이들의 아픔에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보여준 한국의 가치외교와 국제연대가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조속히 끝내고 국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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