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 잇단 석유화학 투자…'이중고' 될까
최근 석유화학 불황 지속…노하우·기술력으로 승부
정유사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뛰어든 석유화학 사업 탓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석유화학 불황이 여진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정유 업황도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어 정유사들의 부담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정유업체들은 "나무보다 숲을 보겠다"는 입장이다. 불황을 견디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력을 앞세워 석유화학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석유화학 비중 늘리는 정유업계
에쓰오일(S-OIL)은 지난 3월부터 대규모 석유화학 사업인 '샤힌 프로젝트' 공사를 시작했다. 샤힌 프로젝트는 오는 2026년 6월까지 9조2580억원을 투자해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스팀크래커(기초유분 생산설비)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석유화학사업 비중을 기존 12%에서 2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GS칼텍스도 석유화학 사업에 뛰어들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전남 여수에 올레핀생산시설(MFC)을 준공했다. 여기에 투입된 금액은 2조7000억원으로, GS칼텍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이 곳에선 연간 에틸렌 75만톤, 폴리에틸렌 50만톤, 프로필렌 41만톤 등을 생산한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2014년 롯데케미칼과 합작해 현대케미칼을 설립했다. 현대케미칼은 지난해 충남 대산 현대오일뱅크 공장에 석유화학설비 HPC(Heavy feed Petrochemical Complex)를 준공했다. 이 곳에선 에틸렌과 프로필렌 각각 80만톤, 40만톤을 포함해 폴리에틸렌 30만톤 등을 생산하고 있다.
정유업체들이 이처럼 석유화학 사업에 뛰어든 것은 수익성이 불안정한 정유 사업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글로벌 경기침체로 국제유가 변동 폭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 최근 정제마진 약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석유화학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국제정세 등 외부요인의 영향을 크게 받는 탓에 정유사업의 변동성도 매우 크다"며 "이 때문에 정유사들은 사업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석유화학 분야는 원유를 가공하는 사업인 탓에 정유업체들이 진출하기 비교적 쉽다"고 설명했다.
먹구름 낀 석유화학 업황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유업체들이 수익 안정화를 위해 석유화학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석유화학 업황이 좋지 않다. 대표적인 석유화학 업황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수치)는 15개월째 손익분기점을 밑돌고 있다. 석유화학업계에선 통상 에틸렌 스프레드 300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본다.
19일 산업통상자원부 원자재가격정보에 따르면 7월 둘째주 에틸렌 스프레드는 127.375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1월 29달러를 기록한 이후 최저치다. 에틸렌 스프레드는 올해 2분기 들어서면서 286달러까지 치솟으며 석유화학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 인상으로 석유화학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올랐고, 에틸렌 스프레드도 다시 100달러 수준까지 내려왔다.
석유화학 업계 불황은 경기 침체로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초 중국의 리오프닝 정책으로 수요 회복을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회복세가 더딘 상태다.
윤용식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초 중국 리오프닝과 부양정책 실시로 내수 경기 활성화가 기대됐지만, 예상보다 회복세가 느리다"며 "한국의 석유화학제품 최대 수출국인 중국 내수 경제 회복이 지연되면서 저조한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황 개선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석유화학 제품 최대 생산국인 중국이 석유화학 내재화를 위해 생산 설비를 대폭 늘리고 있어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연 2711만톤이었던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올해 91% 늘어난 5174만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정유업계에선 장기적으론 석유화학 사업이 수익성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중국의 대규모 증설, 공급량 증가로 석유화학 사업 불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결국 나중엔 기술력이 좋은 업체들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며 "국내 정유사들은 그동안 정유사업을 통해 확보한 노하우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석유화학 업계에서도 큰 강점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성 (mnsu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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