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장악' 종착지는 충전?…현대차 고민 빠지게 한 머스크의 진짜 노림수

최경민 기자, 정한결 기자, 이세연 기자, 세종=조규희 기자, 치체스터(영국)=이강준 기자 2023. 7. 2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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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충전기 헤게모니(上)
[편집자주] 전기차가 늘어나면서 당연히 커질 시장. 바로 전기차 충전기 시장이다. 미래 먹거리 마련 차원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빅데이터 수집을 위해 아예 충전기 시장 장악에 나섰다. 무선충전과 로봇충전 등 신기술에 눈을 돌리는 기업도 적지 않다. 충전기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한 셈이다.
전기차 패권 노리는 '테슬라 제국'…충전기, 160조원 이상의 가치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전기차 충전기는 '주유기' 역할만 하지 않는다. 충전기를 통해 각종 '데이터'가 오가기 때문이다. 미래 전기차 시장 장악을 위한 필수 요소로 충전기가 거론되는 이유다. 이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첫 발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가 뗐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자신들의 전기차 충전 규격인 북미충전표준(NACS) 채택과 관련해 폭스바겐 등을 접촉하고 있다. 벤츠에 이어 독일 업체의 NACS 네트워크에 추가 합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GM과 포드는 NACS 채택을 선언한 상태고 스텔란티스는 검토를 진행 중이다. 스웨덴의 볼보 역시 테슬라와 손잡았다.

이는 충전기 표준이 기존 합동충전시스템(CCS)에서 NACS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NACS와 CCS는 일단 겉모양부터 차이가 난다. NACS가 CCS보다 날렵한 모양으로, 더 가볍다. 기능적으로 보면 NACS는 한 개의 단자로 완속·급속 충전이 가능하지만 CCS는 그렇지 않다. 대신 CCS의 경우 350kW(킬로와트) 이상의 급속충전이 가능해 15분 정도면 완충할 수 있다. NACS는 250kW 수준으로, 완충까지 30여분 걸린다.

테슬라의 진짜 목표는 '데이터'에 있다는 게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실제 NACS 충전기 구멍 5개 중 3개는 전력 공급용이고 2개는 데이터 수집용이다. 차종별 배터리의 상태, 충전속도 등의 정보를 모두 테슬라의 충전 스테이션인 슈퍼차저를 통해 수집할 수 있다. 테슬라 슈퍼차저를 쓰려면 모바일 앱도 필수적으로 깔아야 하는데, 이를 통한 마케팅 정보 획득도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본다.

테슬라를 이끄는 머스크의 야망이 보다 명확해지고 있다. 파격적인 할인을 통해 판매대수를 끌어올리고, 완전자율주행 실현을 위한 빅데이터를 모은다. 여기에 NACS 네트워크로 충전기와 앱을 확산시켜 차량과 고객에 대한 각종 정보까지 확보한다. 빅데이터를 통해 사실상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전기차 헤게모니 장악이 종착지인 것이다.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현대차그룹은 일단 CCS 방식을 유지하면서 NACS 채택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테슬라가 주도하는 질서에 마냥 편입될 수는 없지만, NACS 네트워크가 힘을 얻는 현실을 부정하긴 힘들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대세가 테슬라쪽으로 쏠리고 있지만, 데이터 유출은 분명 현대차가 꺼리는 지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독자적인 전기차 충전 서비스 플랫폼을 흔들림 없이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데이터 문제도 있지만, 전기차 확산 속도를 봤을 때 거대한 충전기 시장이 열릴 게 분명하기에 이를 놓칠 수 없다. 시장조사기관 아이디테크엑스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충전 시장 규모는 10년 내 약 16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현대차 외에도 SK, LG, 롯데 등 대기업들이 전기차 충전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K시그넷은 초급속 충전기(350kW 이상) 부문 미국 점유율 1위(50% 이상)에 오르는 등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무선 및 로봇 충전과 같은 미래기술 확보에도 적극 나서는 중이다.

정부는 지원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 기업의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을 통해 수출 경쟁력을 강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머스크는 '충전기'에서 '빅데이터'를 노린다…고민 커지는 현대차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

"테슬라가 북미충전표준(NACS) 설계와 관련해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정보를 공개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적극적인 이유요? 데이터 때문이죠."

글로벌 자동차 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볼보,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테슬라식 NACS 도입을 줄줄이 결정한 것의 배경에는 '데이터'을 노리는 일론 머스크 CEO(최고경영자)의 적극적인 구애가 있었다는 것이다. 테슬라의 노림수를 알고 있어도 미국 고속 충전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고, 전 세계 4만5000여개에 달하는 슈퍼차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NACS를 사용해야 한다.

데이터 확보는 충전기를 통해 이뤄진다. 전기차 충전기는 단순 충전 역할만 수행하는 게 아니라 데이터 수집의 역할까지 한다.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는 테슬라의 NACS 네트워크 확장 이유에 대해 "일론 머스크에게 빅데이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테슬라가 경쟁사 차량으로부터 배터리 충전속도 등의 데이터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사용자의 충전 패턴, 배터리 소모 속도, 배터리 설계를 비롯해 엔진 제어 유닛에 대한 정보까지 접근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테슬라 앱'은 또 다른 데이터 수집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슈퍼차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와 배터리 상태 등을 표시해주고, 결제까지 진행하는 테슬라 앱이 필요하다. 테슬라는 이미 비(非)테슬라 유저가 슈퍼차저를 쓰려면 반드시 앱을 깔아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실제 미국·중국·터키·유럽 일대에서 테슬라 외 전기차에 슈퍼차저 이용이 가능하도록 시범 운영 중인데, 앱 사용과 계정 생성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휴대폰 앱을 통해 수집한 카드 및 동선 정보 등의 경우 향후 고객 마케팅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그래픽=이지혜 디자인기자

합동충전시스템(CCS)을 고수하는 현대차는 테슬라의 노림수를 경계하면서 가볍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진행된 '아이오닉 5 N'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서 NACS 채택 여부와 관련해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지만 아직 모르겠다"고 했다.

SDV(소프트웨어 기반의 차량) 전환을 선언한 상황에서 차량·배터리·고객 관련 데이터를 경쟁사인 테슬라에 넘기는 것에 대한 우려가 현대차 내부에 존재한다. 김흥수 현대차 GSO 담당 부사장은 지난달 "테슬라의 충전 인프라에 참여하면 당장 많은 충전소를 쓸 수 있겠지만 많은 데이터와 부가서비스 등이 테슬라에 종속된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차량과 연계한 부가적인 가치 창출을 할 수 없다면,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 자체를 잃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이오닉5·EV6 등 현대차의 주력 전기차의 경우 800볼트(V) 초급속 충전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테슬라 슈퍼차저는 500V만 제공하는 것 역시 고민의 한 지점이다.

하지만 NACS를 무조건 멀리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폭스바겐마저 NACS로 넘어가면 현대차가 사용 중인 CCS를 사용하는 주요 글로벌 완성차업체는 몇 개 남지 않는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데, 조만간 결정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테슬라와 같이 갔을 때 고객에게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를 고려해야 한다"며 "충전효율이 효과적으로 나오는지 검증해야 하고, 테슬라도 우리를 도와줘야 할 것이 많이 있다"고 강조했다.

충전기 '160조원 시장' 절대 못 놓쳐…그런데 아파트 주차장은요?
국내 기업들 전기차 충전기 사업 현황 /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현대차, SK, LG 등 대기업들이 160조원에 달할 것으로 관측되는 전기차 충전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국내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아파트 주차장' 위주의 충전시설 확충 등이 과제라는 평가다.

16일 시장조사기관 아이디테크엑스에 따르면 글로벌 전기차 충전 인프라 시장은 내년부터 10년 동안 연평균 14%의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2034년 시장 규모는 1230억 달러(약 16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동안 3억4500만대 이상의 전기차 및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차량이 사용되면서 덩달아 충전 시장 역시 확대될 것으로 아이디테크엑스는 내다봤다.

이런 추세에 발맞춰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초고속 충전기(E-pit) 5000기를 구축할 계획이다. 애초 3000기를 목표로 잡았지만, 지난해 성공적인 전동화 전환을 위해 목표치를 올렸다. 현재까지 전국 총 26개소에 146기의 E-pit를 구축했다. 앞으로 롯데그룹, GS칼텍스 등 기업, 지자체와 협력해 충전기 구축에 나선다.

LG전자는 최근 전기차 충전기 생산을 시작했다. 1호 충전기는 지난해 LG전자의 자회사로 인수된 전기차 충전기 전문업체 하이비차저(전 애플망고)에서 생산했다. LG전자는 전기차 충전기 제조와 충전 인프라 운영, 연계 서비스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SK시그넷은 최근 초급속 충전기를 연 1만기 만들 수 있는 미국 텍사스 공장을 완공하고 사업 팽창에 시동을 걸었다. 미국 내 초급속(350kW 이상) 분야 점유율이 50% 이상이다. 30~50kW급 중속 충전기 제품도 조만간 선보인다. 연내 테슬라식 북미충전표준(NACS) 충전기를 생산키로 하는 등 시장 변화에도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SK시그넷 초급속 충전기 V2 모델 렌더링 이미지

롯데와 신세계 등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보유한 유통업체도 전기차 충전 사업에 뛰어든다. 기존 주차장을 사업장으로 활용하고, 유통 연계 서비스로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IT 기업 NHN은 SK E&S와 손잡고 주차장 시설을 기반으로 한 전기차 충전 솔루션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전기차 충전 시장의 확대를 위해서는 '공용 인프라 확충'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인들의 거주 형태가 '주택'이 아닌 '아파트' 위주이기 때문이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전기차 수 대비 공용 급속충전기 수의 비율은 5.3%, 공용 완속 충전기 비율은 44%에 그쳤다.

정부는 아파트 주차장이나 복합쇼핑몰에는 완속 충전기를, 고속도로 휴게소 등 이동거점이나 대형마트에는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는 식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동형·무선형 등 신기술 충전기를 서둘러 개발해 충전수요가 많은 곳에 설치하는 방안 역시 대안으로 거론한다. 또 전기차 충전시장을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공공 급속충전기(약 7000기)를 단계별로 민간에 매각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 123만기 이상의 충전기를 보급하는 게 정부의 목표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주거환경과 생활패턴에 맞게 기업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현재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민간이 적극적으로 충전기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만큼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민 기자 brown@mt.co.kr 정한결 기자 hanj@mt.co.kr 이세연 기자 2counting@mt.co.kr 세종=조규희 기자 playingjo@mt.co.kr 치체스터(영국)=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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