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집집마다 문 두드렸어요"…'극한호우' 속 임대주택 침수 막은 '숨은 영웅'

박기현 기자 2023. 7. 2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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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던 날에 제가 출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차마 상상하지 못하겠어요. 확실한 건 만약 지하에 주민이 있었다면 빠져나오기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20일 충북 충주의 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단지 관리소장인 김춘식씨(57)가 <뉴스1> 과 통화에서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지상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물이 무릎까지 차오를 때까지 지하주차장에서 남은 주민이 없는지 확인한 뒤 가장 늦게 지상으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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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데도 평소보다 3시간 일찍 출근…범람 피해 최소화
원희룡 "적극적 대처로 침수 피해 막아…이런 분 계셔서 다행"
노란색 우비를 입은 김춘식 관리소장이 침수 피해를 입은 단지 지하주차장의 배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뉴스1) 박기현 기자 = "비가 쏟아지던 날에 제가 출근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차마 상상하지 못하겠어요. 확실한 건 만약 지하에 주민이 있었다면 빠져나오기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20일 충북 충주의 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단지 관리소장인 김춘식씨(57)가 <뉴스1>과 통화에서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인터뷰 도중 수차례 자신이 제시간에 출근을 결심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하기 싫다"며 혀를 내둘렀다. 충북은 집중호우로 전날 오전 4시 기준 31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겪었다.

김씨는 지난 14일 밤 비가 심상치 않게 내리자 불안한 마음에 잠을 설쳤다. 침수 사고 당일 오전 5시쯤에 눈을 뜬 김씨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토요일(15일)인데도 자신의 출근지인 신한강변 아파트로 서둘러 향했다.

평소 출근시각보다 3시간 이른 오전 6시쯤 단지로 도착한 김씨는 단지 바로 인근 달천의 수위부터 확인했다. 김씨는 "물이 많이 차서 찰랑찰랑거렸지만 아직 넘을 단계는 아니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김씨는 단지 점검을 마친 뒤 곧바로 하천 근처로 복귀했다. 바깥을 주시하며 대기하던 김씨는 오전 7시10분쯤 지하주차장 입구쪽 도로에 "물이 아주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달천 범람으로 침수 피해를 입은 충주 신한강변 아파트 인근(LH 제공)

김씨는 주민들에게 지하 주차장에서 모두 대피해야 한다고 전화를 돌렸다.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방송 시스템(체계)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씨가 평소에 주민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주민들의 연락처를 저장해놓은 게 다행한 일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주민들의 집은 직접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다.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부랴부랴 지상으로 대피하거나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을 황급히 빼냈다. 김씨는 지상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물이 무릎까지 차오를 때까지 지하주차장에서 남은 주민이 없는지 확인한 뒤 가장 늦게 지상으로 올라왔다.

김씨는 지하주차장 출입을 통제하고 주변 주민들에게 도움을 구해 지하주차장 앞에 임시 둑을 설치했다. 평소에 비상용으로 마련해놨던 모래주머니는 금세 동났지만, 주민들과 합심해 포대에 모래를 새로 담아 끝내 3칸짜리 둑을 완성했다.

물이 하천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침수에 이르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무섭게 범람하는 물이 630㎡ 규모의 지하주차장을 성인 남성 키 높이까지 채우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30분이었다. 힘들게 쌓은 둑은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터졌다.

LH, 소방 등이 협업해 침수된 충주 신한강변 아파트 주차장을 정비하는 모습(LH 제공)

물은 일대를 휩쓸었지만 해당 단지는 유사 사고와 결과가 판이하게 달랐다. 연락이 닿지 않아 미처 이동하지 못한 4대의 차량 침수를 제외하고 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1건의 인명피해도 없었다.

지하주차장은 다음날 오후 8시가 돼서야 배수가 완료됐다. 김씨가 소속된 주택관리공단 외에도 소방, LH 충북지사 등이 협업해 배수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LH는 향후 유사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현재 해당 단지에 차수판을 설치하고 있다.

김씨의 이 같은 침착한 대처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언급하면서 처음 드러났다. 원 장관은 "적극적인 대처로 침수된 지하주차장 피해를 막은 LH 임대주택의 관리소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며 "이런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여전히 살 만한가 보다"고 말했다.

김씨는 "총 세대수가 138가구에 불과한 2개 동 작은 아파트라 당직자도 없고 직원도 2명이라 쉽지 않았다"며 "다만 누구나 자신의 일이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masterk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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