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관리 일원화’ 되돌리고 ‘포스트 4대강’…“토건족 배만 불릴 것”
‘4대강 재자연화’와 함께 수자원 정책 후퇴하나
충북 청주시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를 계기로, 여당을 중심으로 지난 정부 때 시행된 ‘물관리 일원화’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치수’ 전문성이 없는 환경부가 하천 정비를 관할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수해 재난마저 정쟁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정부·여당을 비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9일 서울 양천구 대심도 빗물 터널 현장을 방문해 “문재인 정권 초기인 2018년 국토교통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로 나뉘었던 물관리를 환경부로 일원화했다”며 “환경부가 전국 지류·지천, 하수 관리 전반을 담당할 역량이 되는지 많은 의문이 제기됐는데, 이번 폭우 사태를 겪으며 많은 의문이 현실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관리 실패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직접 위협하고 심대한 재산 피해를 야기하는 만큼 문제점 보완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일어난 원인으로 충북 미호강 임시제방 붕괴가 지목되고 있는 상황에서, 치수 전문성이 없는 환경부가 하천 정비를 관할해 문제가 생겼다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여당에선 이참에 물관리 업무를 국토교통부로 다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김 대표는 이런 주장에 대해 “지금 해야 할 일은 호우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 대한 대책, 사후 수습이다. 당장 급한 과제부터 해놓고 차근차근 생각해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당 핵심 관계자는 “당정이 물관리를 국토부로 재이관하는 것을 검토할 수는 있으나,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물관리 일원화와는 전혀 관계없는, 윤석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무능과 무책임이 만들어낸 명백한 인재”라며 “억지주장이자 물타기”라고 반발했다.
✅ ‘물관리 일원화’가 홍수 주범?
물관리 일원화가 갑자기 도마에 오른 건,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를 일으킨 원인에 충북 미호강 임시제방 붕괴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 쪽에선 ‘수질’ 관리를 담당하던 환경부가 전문성 없는 ‘치수’ 업무까지 떠맡게 돼 하천 정비를 관할해 문제가 생겼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물관리 일원화를 원인으로 몰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당장 이번 참사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미호천 하천정비사업’ 연기를 결정한 주체는 국토부였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2017년 하천 폭을 넓히는 ‘미호천 하천정비사업’ 공사를 착수했으나, 오송-청주 도로확장공사(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와 충북선 개량공사(국토교통부)가 진행되면서 사업을 연기했다. 하천 정비 관할이 환경부로 넘어온 것은 이미 이 사업이 연기된 이후인 지난해 1월이었다. 물관리 일원화에 따라 2018년부터 수자원 관리, 하천시설 정비 등 국토부 업무를 순차적으로 넘겨받은 데 따른 것이다.
게다가 새로 제∙개정된 물관리기본법과 정부조직법에 따라 국토부의 관련 국∙실 직원들이 환경부로 왔고, 산하 공기업인 수자원공사도 환경부에 배치됐다. 부서가 통째로 이동해 같은 업무를 하고 있어, 환경부가 전문성 없는 치수 업무를 떠맡았다는 주장은 과한 측면이 있다.
✅ OECD 23개국도 물관리 일원화
여당 쪽에선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갖고 물관리 일원화를 추진했다고 몰아가는 듯한 분위기다. ‘4대강 재자연화’를 추진하기 위해 물관리 일원화도 함께 추진했다는 것이다.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로 이후,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19일 공개된 <세계일보> 인터뷰를 통해 “홍수 피해가 우려되는 지방하천은 국가가 우선 정비하고, 홍수 대응이 시급한 지방하천의 국가하천 승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9년 출범한 제1기 국가물관리위원회에 있었던 송미영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와 관련 물관리 일원화가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학계와 전문가들이 2018년 시행 10년 이상 전부터 논의해왔던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19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각 부처와 전문가 등이 자기 분야만 하니까, 분야간 중복이 일어나고,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됐다”며 “이를테면 한쪽에서 치수한다고 제방을 올렸는데, 나중에 물환경이 나쁘다며 복원하는 경우가 있다. 처음부터 통합적으로 검토해 이런 예산 낭비와 비효율성을 줄이자는 게 물관리 일원화”라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의 경우도 홍수 예방이라는 치수와 녹조 악화라는 수질 관리가 동시에 고려돼야 했지만, 치수적 목적에만 치중해 사업이 강행됨으로써 혼란을 초래했다.
그는 또 “앞으로 400년, 500년 빈도의 비가 더 자주 쏟아질 텐데 강바닥을 준설하고 대심도 터널을 설치하는 것으로 피해를 막을 수 없다”며 “각 분야가 통합적으로 모여 하수도, 하천, 토양 등 도시 전체를 리모델링해야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8년 이후 한국에 지속해서 수량과 수질관리를 통합하라고 권고해왔다. 환경부에 따르면, 오이시디 35개 회원국 가운데 영국, 프랑스, 독일 등 23개국은 환경 부서가 물 관리 업무를 통합해 담당하고 있다. 또 자유한국당(지금의 국민의힘)은 19대 대선 당시 ‘수질 생태 전문기관인 환경부에 물 관리를 일원화하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 지천 정비하자고 할 때는 4대강 본류 공사하더니…
정부와 여당은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를 계기로 올초부터 본격화했던 ‘4대강 재자연화 폐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환경부와 여당 쪽은 홍수 피해가 우려되는 지방하천은 국가가 우선 정비하고, 홍수 대응이 시급한 지방하천을 국가하천하고 승격하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사실 이명박 정부가 홍수 예방 등을 목적으로 내세워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4대강에 16개 보를 설치하겠다고 나섰을 때, 환경단체와 비판적인 전문가들이 ‘홍수는 4대강 본류가 아니라 지천에서 일어난다’며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비판한 바 있다.
4대강 사업이 시행되기 전인 2006년 나온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 본류보다 지천 주변에 홍수 빈발 지역이 몰려 있는 사실을 밝히면서, 보 건설보다는 하천의 공간(홍수터)를 넓히는 비구조물 중심의 홍수 방어를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국토부는 “물그릇을 크게 하면 지천의 수위도 낮출 수 있다”며, 4대강 사업을 ‘근원적인 홍수 예방 사업’이라며 정의하고 16개 보 건설에 매진했다.
오는 20일에는 ‘친4대강 시민단체’인 4대강국민연합(대표 이재오)이 국민감사청구를 한 것에 대해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감사 결과가 나오는 직후 4대강 재자연화 폐기와 관련한 입장을 내겠다고 밝혔다.
환경단체는 한 장관이 꺼내 든 ‘지천 정비’가 토목 사업 중심의 ‘포스트 4대강 사업’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이철재 생명의강 특위 부위원장은 “국토부의 4대강 홍보에도 불구하고 지천에서는 홍수가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 정부의 태도는 전 정권 때리기와 재난 피해의 책임 돌리기”라며 “환경부의 지천 사업도 4대강 사업처럼 결국 토건 세력의 배만 불릴 것”이라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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