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 센데, 구명조끼 왜 안입혔냐" 오열한 부모..해병대측 "현장 지휘관 판단"

문영진 2023. 7.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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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군 호명면 황지리 내성천 일대에서 산사태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던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19일 동료 해병대원들이 망연자실한 채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별다른 구호장비 없이 강물에서 수색 작업에 나섰던 이 해병대원은 이날 밤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20대 해병대 A일병이 14시간 만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A일병은 사고 당시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해병대가 기본적인 안전장구도 갖추지 않은 채 병사들을 무리하게 급류 속으로 밀어 넣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9일 군·경과 소방 합동 수색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1시8분쯤 경북119특수대응단은 경북 예천군 호명면 월포리 고평대교 하류 400m 지점에서 실종된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20) 일병을 찾았다.

당시 A일병은 물 밑에 엎드린 상태로 발견됐으며, 현재는 인양을 완료한 상태다. A일병의 사망 여부는 병원에서 판정될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A일병은 이날 오전 9시 10분쯤 예천군 호명면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 주민 수색 임무를 수행하다 사라졌다. A일병을 포함한 해병대원 6명은 내성천에서 손을 잡고 일렬로 줄지어 서서 한 걸음씩 나아가며 실종자를 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하천의 물살이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거셌고, 며칠째 이어진 집중호우로 바닥에 퇴적물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면서 대열은 이내 흐트러졌다. 하천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한 대원들은 물 밖으로 나가기로 했는데 내성천을 빠져나오던 A일병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간 것이다. 함께 물살에 휩쓸렸던 2명은 수영해서 빠져나왔으나 A일병은 20m가량 떠내려가다가 사라졌다고 장병들은 전했다.

이날 보문교 일대 내성천에 투입된 해병대 장병들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인간띠’를 만들어 강바닥을 수색했다. 사고 당시 보문교 부근에는 해병대원 39명이 있었다. 이들은 일렬로 4m 정도 거리를 두고 9명씩 짝을 맞춰 장화를 신고 수색에 투입됐다.

이날 내성천은 수일간 내린 많은 양의 비로 수위가 높고 유속도 빨랐지만 이들에게 제공된 구호장비는 없었다. 대개 경찰과 소방 당국은 수색 구조를 위해 구명보트, 드론, 구조견, 안전모, 구명조끼, 로프, 탐침봉, 구명환을 활용한다.

해병대 1사단 측은 “물에 들어갔을 때 깊지 않았고, 소방 당국과 협의가 이뤄진 하천 간 도보 수색 활동이었다”며 “유속이 낮은 상태에서 지반이 갑자기 붕괴할 줄 몰랐다”고 해명했다.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현장에 달려 온 부모는 오열했다. A일병 아버지는 중대장에게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오고 물살이 셌는데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그는 이어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왜 구명조끼를, 물살이 얼마나 센데, 이거 살인 아닌가요, 살인”이라며 “구명조끼도 안 입히는 군대가 어딨느냐. 기본도 안 지키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일병 어머니 역시 “착하게만 산 우리 아들인데. 그렇게 해병대에 가고 싶어 해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갔는데. 어딨어요. 내 아들”이라며 주저앉았다.

한편, 해병대 내부 규정상 수상에서 움직이는 함정이나 고무보트 등을 운용하는 인력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게 돼 있지만 강이나 하천변에서 탐침봉으로 수색하는 인원들에 대한 별도 의무 규정은 없다고 해병대 측은 주장했다. 이번 작전 과정에 명확하게 들어맞는 명시적인 규정은 존재하지 않고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하도록 돼 있다는 게 해병대 측 주장이다. 해당 부대는 전날에도 같은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수해 주민의 시신을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은 전날보다 날씨가 좋고 유속이 느려 보여서 현장 지휘관이 구명조끼에 대한 필요성을 간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해병대는 자체 수사단과 안전단을 현장에 파견해 안전 대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 경위를 파악해 안전조치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구명조끼 착용을 지시하지 않은 현장 지휘관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꼬리자르기식 결론을 내린다면 사태 재발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적어도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이라면 헬멧과 구명조끼 등 안전 장비 착용은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군인권센터는 “해병대 병사 실종은 무리한 임무 투입으로 인한 인재”라며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군 장병이 대민지원 임무에 투입될 수 있지만, 하천에 직접 들어가 실종자를 수색하는 임무를 경험이 없는 일반 장병에게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구명조끼 #해병대원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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