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최저임금 1만2천원' 외쳤지만…명분도 실리도 잃었다
협상 전략 부재…막판에는 양대노총 불협화음까지
내부평가 분분…"조정안 받았어야" vs "큰 차이 없어"
[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국 1만원 문턱을 넘지 못하고 9860원에서 멈췄다. 올해 최저임금 시간당 9620원에서 2.5%(240원) 인상된 수준으로 최저임금 심의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인상률이다.
당초 노동계가 주장했던 1만2000원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인 데다, 협상 막판에 양대노총이 공익위원 중재안인 9920원에 의견 불일치를 보여 결국 이보다 60원 낮은 사용자위원안으로 의결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결과적으로 명분도 실리도 잃은 협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일 최임위에 따르면, 최임위는 지난 18일부터 19일 오전까지 제14·15차 전원회의를 열고 밤샘 마라톤 협상 끝에 2024년 최저임금을 시간당 9860원으로 의결했다.
이같은 결과는 다소 의외다. 노동계는 지난 4월 26일 일찌감치 기자회견을 열고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1만2000원 운동본부'를 발족해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2000원은 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시는 최임위에서 본격적인 최저임금 수준이 논의되기 전일 뿐더러, 양대노총이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첫 전원회의가 무산된 직후였다.
본격적인 최저임금 심의가 개시된 후 노동계가 제시한 1차 요구안은 1만2210원이었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보다 26.9% 인상된 안으로, 노동계 내부에서도 '무리수'라는 반응과 함께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격한 반대를 불러왔다.
노동계의 전략 부재는 협상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15번의 회의를 거치는 동안 노동계의 인상요구안 수준은 26.9%→26.1%→19.9%→10.4%→10.0%→4.2%→3.95%로 대폭 낮아졌다. 반면 경영계의 요구안은 0%, 올해 최저임금 9620원의 동결에서 출발해 최종적으로 2.5% 인상 요구에 그쳤다. 경영계 요구에 따라 노동계가 맞추는 모양새가 되면서 사실상 협상의 주도권을 잃은 모양새가 된 것이다.
사상 초유의 근로자위원 해촉 사태를 두고 보인 노동계의 태도도 맥이 빠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초 최임위는 지난달 30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망루 농성'을 벌이다 구속된 근로자위원인 김준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대리 표결권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다 대리 표결이 가능한 쪽으로 최임위 운영규칙을 개정하기로 내부 의견을 모았다. 최임위는 근로자위원·사용자위원·공익위원 각 9명씩 27명으로 구성되는데, 김 사무처장의 대리 표결권을 인정하지 않을시 노사공 동수가 깨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돌연 고용노동부가 김 사무처장을 '품위 손상'을 이유로 해촉했고, 한국노총이 후임으로 추천한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 위촉을 거부하면서 노동계가 단체로 항의 퇴장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불참 선언에 이어 최임위까지 파행을 빚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양대노총은 이틀 뒤 곧바로 복귀했다.
당시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노동자들의 삶을 지키고 권리를 개선하기 위해 협상과 투쟁을 병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명분을 내세우기보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실리를 위해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9일 새벽에 보인 양대노총의 불협화음은 명분도 실리도 잃은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공익위원들은 노사합의안을 도출하겠다는 기조 아래 양측으로부터 10차 수정안을 제출받았다. 노동계는 9차 수정안에서 제시한 1만20원을, 경영계는 9840원을 주장했다. 공익위원은 양측이 합의 가능한 수준으로 격차가 좁혀졌다는 판단 하에 운영위원회를 개최해 9920원을 조정안으로 제시했다.
한국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과 사용자위원 전원, 공익위원 전원은 이에 찬성한 반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반대하면서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의견 불일치에 양대노총 관계자 간 고성도 오고갔다고 한다. 결국 노동계는 과반수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도출, 공익위원의 조정안을 거부했다.
이후 최임위는 노사로부터 최종제시안 1만원과 9860원을 제출받아 표결했다. 결과는 근로자위원안 8명, 사용자위원안 17명, 기권 1명이었다. 사실상 노동계가 공익위원안을 받아들였다면 최종 의결된 9860원보다 60원 높은 9920원이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결정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두고 노동계 내부에서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노사합의안을 통과시켰다는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60원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 차이이지 않느냐"며 "기울어진 운동장인 상황에서 결정한 사안을 무작정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인사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10원, 20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느냐"며 "9920원만 됐어도 '졌지만 잘 싸웠다'는 얘기가 나왔을 텐데, 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명분도 실리도 잃은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한국노총은 이같은 상황이 양대노총 간 불화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양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노동계를 계속 자극하면서 갈라치기하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정하기 위한 짜여진 각본이었다"며 "이런 국면에서 노동계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맞느냐를 두고 심사숙고 하다 같이 가는 것으로 하고 공익위원안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delant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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