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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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폭염주의보'가 떨어져도 주의할 게 없다.
온종일 뙤약볕을 온몸으로 떠안거나, 분명 실내인데도 30도가 넘는 온도를 삼키는 노동자들이 주저앉기 시작한 시간.
루벤 가예고(애리조나·민주당), 실비아 가르시아(텍사스·민주당), 마크 아모데이(네바다·공화당) 하원의원은 지난달 관련 법안을 제출하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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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폭염주의보'가 떨어져도 주의할 게 없다. 한나절 책상머리에 앉아 지나친 냉방을 견디는 나는 사무직이다. '폭염경보'가 떠도 마찬가지. 냉방병이란 번거로운 질환에 시달리면 시달렸지, 폭염에 구역질해본 기억이 없다. 나의 밥벌이는 기후와 별개로 돌아간다. 한여름 노동의 현장에서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을 수시로 닦아내거나, 겨울 복판의 추위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일당을 챙긴 일이 없다는 뜻이다.
한 개그맨은 '공부 안 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 나처럼!'이란 말을 남겼다. 성적과 건강권을 엮는 잔인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뜻한 '기후 안전지대'를 일터로 삼은 이후, 남모를 안도감과 묘한 우월감을 느낀 적이 없지 않았다. 기자 초년병 시절 찾은 서울 영등포 쪽방촌의 여름 나기 취재 현장. 잠깐의 무더위에도 '빨리 (취재를) 끝내고 시원한 카페나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내 노동의 결과물은 결국 책상머리에서 나왔으므로.
다시 폭염이 왔다. 온종일 뙤약볕을 온몸으로 떠안거나, 분명 실내인데도 30도가 넘는 온도를 삼키는 노동자들이 주저앉기 시작한 시간. 유별난 기후변화로 더위의 강도는 더 세졌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서 찾은 온열질환 예방가이드에는 폭염특보 발령 시 10~15분 이상 규칙적으로 '쉬어야' 하고, 특히 무더운 시간대에는 옥외 작업을 최소화하고 '쉬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일터에서 쉬는 것에 익숙지 않고, 쉬었다간 큰일 나는 사람들은 말한다. "빨리하고 끝내자."
이른 폭염이 찾아왔던 지난달에도 한 외국계 대형마트 실외 주차장에서 시간당 카트 200개씩을 끌고 옮기던 청년이 스러졌다. 주차 후 매장 안으로 들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불쾌지수가 치솟는 곳이 마트 주차장이다. 우리 모두 가 봐서 안다. '전체 냉방 장치를 설치하기 힘든 실내 작업장에도 더운 공기가 정체되지 않도록 냉풍기나 이동식 에어컨을 설치해야 한다'는 온열질환 예방가이드를 무시할 경우, 폭염은 곧 살인 무기가 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온열질환은 열사병과 열탈진, 열경련 등 그 종류만도 일곱 가지다.
미국만 해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폭염을 '자연재해'로 인정해 정부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루벤 가예고(애리조나·민주당), 실비아 가르시아(텍사스·민주당), 마크 아모데이(네바다·공화당) 하원의원은 지난달 관련 법안을 제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극심한 더위가 덮친 지역 사람들이 안전을 유지하도록, 필요한 자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뉴욕타임스는 "폭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재해"라며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와 달리 상처를 거의 남기지 않지만, 매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했다.
우리는 무얼 하고 있나. 야외 노동자나 거리 생활을 하는 노숙자, 독거노인 등에게 폭염과 한파는 가혹한 재난이다. '폭염사회'를 쓴 에릭 클리넨버그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의 일갈이 뜨끔하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폭염을 무시하고 있다. 폭염으로 많은 사망자를 낸 지역 거주자들은 유독 더위에 취약했던 게 아니다. 공동체가 방치했을 뿐이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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