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민주당과 공산당은 상극이어야 하지 않나

양상훈 주필 2023. 7. 20.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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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자유 법치 위해 싸운 민주화운동 역사의 민주당
정부가 ‘대러 관계 중요’ 현실적 입장 밝혀도
민주당은 ‘독재 침략국과 맞서는 우크라 지원하라’ 외쳐야 정상 아닌가

근래 민주당은 우리나라가 우크라이나를 돕는다는 얘기만 나오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든다. 화가 잔뜩 나서 하는 말까지 거칠다. 러시아 사람들보다 더 러시아 편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러시아를 자극하면 안 그래도 나쁜 남북 관계에 더 부정적 영향을 미칠까 봐 그런다고 한다.

일리가 없지는 않다. 러시아는 우리를 해칠 카드를 갖고 있다. 소련 붕괴 뒤 러시아는 북한에 첨단 무기를 일절 지원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발해 북한에 SU-27과 같은 첨단 전투기를 지원하면 보통 일이 아니다. SU-27은 우리 공군의 주력인 F-15K와 맞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300급 이상의 고성능 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북한에 줘도 큰 위협이다. 러시아가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대북 제재 결의를 정면으로 어기면서 이런 일을 벌일 가능성은 낮지만 최근 푸틴은 이성을 잃은 것 같은 행태를 보일 때가 있다. 러시아가 지금보다 더 북한 편을 들면서 북핵 해결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정세 계산을 떠나서 러시아가 21세기에는 인류가 졸업한 것 같았던 남의 영토 빼앗기 전쟁을 일으켜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미사일 세례를 퍼붓는 것은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어야 마땅하다. 정세 계산은 그다음의 일이다. 민주당은 이 순서가 반대로 돼 있다.

우리 민주당은 스스로를 진보 진영이라고 하고 있지만 소련이나 중국 공산당은 물론이고 유럽, 일본 공산당과도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유럽 일본 공산당은 2차대전 이후 이미 민주화된 사회에서 활동했다. 민주화 운동은 필요 없었고 이념 투쟁에 치중했다. 이와 달리 우리 민주당은 공산·사회주의 이념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통해 성장해왔다. ‘민주주의’가 민주당의 살과 뼈, 전부나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인권과 법치를 생명으로 한다. 실제로 민주당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인권과 법치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겨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민주당은 인권과 법치가 완전히 말살됐거나 형해화돼 있는 북한, 중국, 러시아에 대해 때로는 은근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연대 의식을 보이고 있다. 이들 나라의 일당 독재, 개인 우상화, 법치 말살, 민주화 시위 대규모 학살, 정적과 언론인 암살 등에 대해 사실상 눈감고 있다. 처참한 북한 주민 인권 문제는 외면해야 좋아진다는 희한한 논리까지 만들어냈다.

이념 투쟁에 열심이던 유럽 공산당은 소련의 실상이 드러나자 몰락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원만 수백만명이었고 한때 집권 직전까지 갔지만 소련 체제의 야만성이 잇달아 폭로되자 당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다른 유럽국의 공산당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소련을 이상향으로 추앙하다 실상을 알고 당 간판을 내린 뒤 다당제와 인권, 법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갔다. 그런데 우리 민주당은 반대로 인권과 법치를 위해 싸우다가 막상 민주화가 이뤄지자 뒤늦게 북한, 중국, 러시아에 유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중국, 러시아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협상 대상이다. 그들 나라가 침략 전쟁을 벌이고 여자와 어린이, 노인뿐인 아파트에 미사일을 날려도 어쩔 수 없이 협상을 해야 한다. 한편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고, 한편으로 홍콩과 위구르, 티베트를 안타까워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 심지어 북한 같은 폭력 범죄집단과도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 국제 정치의 현실상 어쩔 수 없습니다”고 해야 하는 것은 정부 여당이어야 한다. 민주당은 이런 정부에 대해 “인권과 법치,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모독”이라며 “정부 여당은 독재 국가와의 관계를 재고하라”고 해야 한다. 민주당은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고통과 함께한다”면서 “정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영토를 되찾고 평화를 되찾을 수 있게 무기를 포함한 모든 지원을 다 하라”고 해야 한다. 독일 진보 진영이 이렇게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 역할이 거꾸로 돼 있다. 특히 민주당이 완전히 거꾸로 돼 있는 것은 당의 민주화 운동 역사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당 내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마음속으로 추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때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세력이 있었지만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민노총 간첩과 같은 사람들은 감옥이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는 것이 맞는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 반미 성격을 띠면서 ‘적의 적은 동지’라는 심리가 북·중·러와의 유대감을 만들었고 이것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대북 ‘햇볕정책’이 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하는 분석도 있다. 실제 민주당은 햇볕정책 이전과 이후가 다른 당처럼 보인다.

무슨 이유이건 민주당은 인권과 법치, 자유, 민주주의라는 본연의 가치를 다시 추구했으면 한다. 이것이 정말 싫다면 당의 이름이라도 바꿔야 한다.

양상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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