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장 힙한 도시’ 샌프란시스코의 추락…마약 취해 차량 털고 총 탕탕
18일(현지 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 텐더로인 지구. 두 남성이 기다란 철제 도구를 들고 길가에 세워진 낡은 파란색 승용차로 향했다. 한 명이 도구를 유리창 안으로 끼워 넣어 위아래로 흔들자, 오래된 차량의 문이 ‘딸깍’ 하고 열렸다. 이들은 차량 안에 있던 옷가지와 가방들을 챙기면서 “오늘도 한 탕 건졌다”고 웃었다. 대낮에 차량 도난 사건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그들을 신고하거나 제재하지 않았다. 범죄가 발생한 거리 인근에는 한 픽업 트럭이 유리창문을 검은색 테이프로 꽁꽁 싸맨 채 주차되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4년 넘게 거주한 한유라(34)씨는 “최근엔 아예 승용차 트렁크를 열고 주차하는 사람도 많다”며 “차량 안에 아무것도 없으니 털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이날 바로 옆 블록 거리에선 총기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람도 보였다. 자영업자 개빈 에번스씨는 “최근 몇 년간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총기 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났다”며 “특히 마약 중독자 중에 총기를 소지하는 사람도 있어 불안하다”고 했다. TV에서는 “경찰이 텐더로인 지구에서 벌어진 총기 사건의 용의자를 찾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꼽혔던 샌프란시스코가 범죄 소굴로 전락하고 있다. 마약 거래, 절도, 폭력, 총기 사고까지 각종 강력 범죄의 온상이 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제곱마일당 범죄율 지수는 938로, 캘리포니아 평균(83)의 11배에 달한다.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이 이 곳을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 시티’라고 부를 정도이다.
◇‘파멸의 고리’에 갇힌 샌프란시스코
최근 지역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샌프란시스코는 ‘파멸의 고리’에 갇혔다”며 “수많은 미국의 도시들이 코로나 여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는 가장 큰 위험에 처해있다”고 했다. 경기 침체로 급증한 노숙자, 마약, 범죄 문제로 사람들은 물론 기업들까지 샌프란시스코를 벗어나고 있다. 도시 활력이 떨어지며 경기 회복이 어렵고, 사회 안전망이 무너지는 악순환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백화점과 고급 음식점이 모여있는 번화가에서 불과 2~3블록 떨어진 ‘미션 7번가’에선 이른바 ‘오픈에어(Open air·야외) 마약 거래’가 곳곳에서 이뤄졌다. 근처에는 약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30미터에 2~3명씩 휘청거리고 있었지만, 단속하는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에 따르면 이곳 마약상들은 많게는 연간 35만달러(약 4억40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그만큼 마약 이용자가 많다는 뜻이다.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가게와 아파트들은 모두 육중한 철창을 설치하고 있었다. 일부 매장은 점심 영업시간에도 철창으로 문을 가렸다가, 손님이 오면 주위를 살피고 문을 열어줬다. 굳게 닫힌 아파트 철창 앞에서 손님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던 음식 배달 기사 케빈 렁씨는 “여기선 안전 때문에 모든 집이 감옥 같다”며 “일부 극부유층을 제외하면 샌프란시스코의 주거 환경은 역대 최악 상태”라고 했다. 최근에는 철저한 경비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 구찌의 매장에서도 강도 사건이 일어났다.
◇기업들, 너도나도 엑소더스
현지에선 “폐업은 샌프란시스코의 최신 유행”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로 이날 샌프란시스코의 핵심 쇼핑가인 유니온 스퀘어에는 두세 가게 건너 하나씩 ‘감사했습니다’라는 폐업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3000여평 크기의 쇼핑가에서 올 들어 폐업을 했거나 곧 하기로 한 곳만 20여 곳에 달하기 때문이다.
유니온 스퀘어에서 24년 동안 영업했던 패션 브랜드 ‘올드 네이비’는 지난 1일 폐업했다. 불과 300m 거리에 있는 고급 백화점 ‘노드스트롬’도 “늘어나는 매장 절도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겠다”며 8월 폐업을 앞두고 있고, 최근 문 닫은 상설 할인 매장 ‘노드스트롬 랙’ 안은 텅 빈 채로 “전 제품 50% 할인”이라는 표지만 남아있었다. 지난달에는 유니온 스퀘어의 대형 쇼핑몰 소유주인 웨스트필드가 쇼핑몰 운영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2002년부터 20년 넘게 이곳 쇼핑몰을 운영해온 웨스트필드까지 ‘손절’을 하면서, 도시가 과연 회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동물학대’ 20만 유튜버, 아내 폭행하고 불법촬영한 혐의로 입건
- [단독] ‘제주 불법숙박’ 송치된 문다혜, 내일 서울 불법 숙박 혐의도 소환 조사
- ‘58세 핵주먹’ 타이슨 패했지만…30살 어린 복서, 고개 숙였다
- 美검찰, ‘월가 마진콜 사태’ 한국계 투자가 빌 황에 징역 21년 구형
- 아이폰부터 클래식 공연, 피자까지… 수능마친 ‘수험생’ 잡기 총력전
- “사법부 흑역사…이재명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 野 비상투쟁 돌입
- 방탄소년단 진의 저력, 신보 ‘해피’ 발매 첫날 84만장 팔려
- [부음]김동규 한신대학교 홍보팀장 빙모상
- 소아·청소년병원 입원 10명 중 9명, 폐렴 등 감염병
- “오 마이”… 린가드도 혀 내두른 수능 영어 문제, 뭐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