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참치 회사는 어떻게 이차전지 시장을 뚫었나
완전히 새로운 영역 뚫기보다 잘하는 기술 확장해 ‘혁신의 사슬’
1960년대 태평양을 누비던 청년 선장 김재철의 배를 일본 원양어선들이 뒤쫓았다. 원양어선에 어군 탐지기도 변변찮았던 시절 김 선장은 참치 배에서 소화 덜 된 생선을 꺼내 원주민들에게 보여준 뒤 그 생선이 많은 해역을 물어서 그 길목을 지키다 참치 떼를 쓸어 담고 있었는데, 일본 어선들은 그 비법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됐던 참치잡이 회사의 혁신은 지금도 이어진다. 반도체, 양자역학, 이차전지 정도 돼야 혁신 기업이라 불릴 것 같은 시대에 오늘은 참치 회사의 60년 혁신을 추적해 볼까 한다.
1982년, 김재철 선장이 참치 잡기를 시작한 지 13년째이던 해에 동원은 참치 통조림을 만들기로 했다. 잡는 수산업에서 식품 제조업으로, 1차 산업에서 2차 산업으로 확장한 것이다. 이듬해 동원참치 판매량이 600만개를 돌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이 무렵 기자도 라면에 참치를 넣어 영양 보충을 시도했던 것 같다.
당시 우리의 제조 역량이 워낙 취약했던 터라 통조림 제조는 미국 회사에 맡겼다. 그런데 통조림 생산 규모 등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점점 미국 통조림 업체 입김에 휘둘리게 되자 독자 생산을 결정했다. 매사가 그렇듯 시련은 발명의 어머니였다. 참치에 물을 넣은 일반 참치 통조림과 달리 동원은 생선 통조림을 찌개나 볶음밥 재료로 활용하는 한국인 특성을 감안해 면실유(지금은 카놀라유)를 넣어 풍미를 높였다. 이 바람에 요즘도 식용유 값이 오르면 참치 통조림의 원가가 올라가는 일이 발생한다. 참치 캔 제조에 나선 지 40년째인 지난해 통조림용 참치 캔의 누적 생산량은 73억개를 돌파했다. 지구 15바퀴를 돌고도 남고, 에베레스트산의 32배가 넘는 높이다. 그사이 동원은 국내 최고의 스틸 캔 제조 업체가 됐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7년부터는 원터치 뚜껑을 국산화했다. 스틸 캔을 따기 위해 별도의 오프너가 필요 없게 돼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의성이 커지고, 생산자 입장에서도 원가 절감 효과를 봤다.
그런 참치 캔 제조 기술이 이제는 이차전지 사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참치 회사가 무슨 이차전지냐고 할지 모르지만 두 갈래로 접근 중이다. 우선 캔 기술을 그대로 활용해 이차전지용 배터리 캔 시장에 진입을 시도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캔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진출한 ‘레토르트 포장재’ 사업에서 획득한 알루미늄박 기술이다. 이차전지의 핵심인데, 동박에 비하면 기술 장벽이 낮지만 향후 급증할 전기차 시대에 유망한 분야다. 동원의 한 관계자는 “완전 새로운 영역을 뚫었다기보다 지금 잘하는 경쟁력을 정확히 파악해 확장하는 ‘혁신의 사슬 방식’이라고 말했다. 혁신이란 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다.
동원은 최근 3년간 현대자동차에서 생산 엔지니어 7명을 스카우트했다. 다시 한번 참치 회사에 웬 자동차 회사 기술자라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 수산, 식품 사업군에 포진해 있다. 자동차 산업만큼 생산 역량이 뛰어난 사업군은 없다는 판단에서다.
산업의 대변혁에다 저성장 시대까지 겹쳐 맞이하는 우리 사회 곳곳에 혁신의 목소리가 높다. ‘전기차’ 시대를 맞는 정유사들은 탈황 기술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는 식이다. 기존의 문법과 법칙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거대한 역경이겠지만 결국엔 혁신으로 뚫고 갈 것이다.
“변하려면 변하면 안 되는 것을 찾아내면 된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면 안 바꿔야 하는 것을 찾아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 ‘경영이란 무엇인가’를 쓴 조안 마그레타의 말을 새겨볼 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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