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95] 장난감 왕국의 영원한 공주
많은 여자아이가 어린 시절 한 번쯤 가지고 싶었던, 친구가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며 생일선물로 원했던 인형 바비(Barbie). 1959년 여성 기업가 루스 핸들러(Ruth Handler)가 ‘모든 소녀에겐 자신의 미래를 꿈꾸는 인형이 필요하다’라는 믿음으로 만든 패션인형이다. 미국 여성의 이상형을 닮은 몸매에 반짝이는 드레스, 여성스러운 눈과 매혹적인 미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세련됨을 가진 바비는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며 장난감 세계의 영원한 프린세스로 군림하게 됐다. 바비는 매텔(Mattel)사 최고 베스트셀러로, 세계 140여 국에서 매년 수조원을 벌어들이는 상품이다. 탄생 이후부터 지금까지 10억개 이상이 팔렸다. 한 줄로 세우면 지구를 12번이나 돌 수 있는 숫자다. 1986년엔 앤디 워홀이 그림으로 그렸고, 2009년 탄생 50주년 패션쇼가 뉴욕에서 열렸을 정도의 문화 아이콘이기도 하다.
바비의 역사는 페미니즘의 역사이기도 하다. 1960년대는 제한적인 여성의 사회활동으로 바비의 역할은 간호사, 발레리나, 여행 가이드, 승무원 정도였다. 1970년대 여성해방론자들의 사회운동을 겪은 바비는 판매량이 감소하고, 상점에서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위기도 겪었다. 1980년대부터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바비의 직업도 변호사, 의사, 회사 중역 등으로 확대되었다. 수십년 세월 동안 200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고 이에 걸맞은 다양한 패션도 선보였다. 디올, 샤넬, 베르사체, 아르마니, 버버리 등의 유명 패션하우스들과 컬래버 행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못난이 3형제’나 ‘테디 베어’ 등 다른 유명 인형들과의 차이점은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의인화다. “쇼핑갈래?” “수학은 어려워”라고 말하는 바비는 여자아이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정서적 장치였고, 온갖 비판에도 바비가 성장하고 버텨왔던 생존비결이다. 근래에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는 바비는 이미 환갑을 넘었다. 이번 주 마고 로비(Margot Robbie) 주연의 실사영화 ‘바비’가 개봉했다. 다양한 형태로 계속되는 바비의 또 다른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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