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노년의 무용수

김다솔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자 2023. 7. 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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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운 몸짓으로 춤을 추는 노년의 남성이 있다. 무대 위, 그는 몸이 가는 대로 팔을 뻗으며 쿵쿵 울리는 심장 소리를 온몸으로 듣는다. 우리나라에는 ‘사랑하는 당신에게’란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 ‘Last Dance’(2022)의 주인공 제르맹의 이야기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홀로 남겨진 그는 아내와의 오래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걱정하는 자식들 몰래 그녀 대신 무용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의 몸짓은 점차 극단 내에서 관심을 끌게 되고, 그를 위한 새로운 안무까지 만들어진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노년의 의미를 새롭게 제시한다. 제르맹이 춤을 추게 된 계기에는 아내와의 약속뿐만 아니라 자신을 무기력한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는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함께 있었다. 어설프지만 열정에 가득 차 도약하는 그의 모습은 순식간에 노년의 의미를 비틀어 버린다. 죽음에 근접해 있던 그의 시간은 다시금 가슴 뛰는 순간으로 거듭난다.

얼마 전 외할머니가 길에서 넘어져 골절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지금은 일상으로 복귀하셨지만, 할머니의 투병을 옆에서 지켜보며, 노년이 집-요양원-병원이라는 협소한 공간에 갇혀 정의된다고 느꼈다. 노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생산성과 활력 등 다양한 가능성이 배제되고 마치 생명 유지만이 최고의 가치인 것처럼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정용준의 ‘자유인’(‘창작과비평’ 2023년 여름호)은 노인 인구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관점이 바뀌지 않는다면 도래할지 모르는 미래를 제시한다. 소설 속 사회는 만 85세 이상의 모든 이들에게 존엄사를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존엄사를 거부하는 주인공은 “나는 그렇게 희미해지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방식대로 여생을 마감할 자유를 꿈꾼다.

아직 젊은 내가 노년에 대해 말하기란 마뜩잖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노년을 자신의 미래로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더욱 다채롭게 채울 때 사회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미래의 나는 어떤 노년을 살아가고 싶은가’라고 함께 질문하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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