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1605년 안동 대홍수

기자 2023. 7. 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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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음력 7월, 예안 고을(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일대)은 열흘 가까이 내린 비로 마을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안동부 관아를 비롯하여 안동 상징인 영호루와 여강서원마저 떠내려갔으니, 약 20킬로미터 정도 상류에 위치한 예안 지역이야 말해 무엇할까 싶다. 당시 이 홍수는 낙동강을 따라 안동과 선산, 경주까지 물바다를 만들었고, <실록> 기록에 따르면 “둥둥 떠다니는 시체가 부지기수”였다. 안동 풍천면 구담 지역 강가에 ‘밀려 나온’ 시신만 40구가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출전: 김령, <계암일록>)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특히 예안 고을을 지나는 낙동강 상류는 분천(汾川)이라는 별도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큰물 분(汾)’자가 하천 이름일 정도였으니, 물살 빠르기와 돌아나가는 모양새가 얼마나 거센지 짐작할 만하다. 이러한 물이 강원도에서부터 폭우를 만나 덩치를 키웠으니, 경상도 북부 지역의 피해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김령의 기록에 따르면, 큰 나무도 뿌리째 뽑혔고 집들은 채 부서지기도 전에 급류에 휩쓸렸다. 하층민들이 사는 낮은 지역 집들은 형체도 찾을 수 없어, 차라리 빗자루로 쓸고 지나갔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의외의 일도 있었다. 숨가쁜 급류는 뿌리째 뽑힌 나무와 목재들을 안고 내려오다 예안에 이르러 강가 이쪽저쪽에 토해냈다. 잠시라도 비가 잦아들면, 강가 들판은 나무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음력 7월22일, 빗줄기는 가늘어졌고 마을 들판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홍수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이 안도의 숨을 쉴 무렵, 예안 사람 이협(李莢)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분천 건너편 들판에 산더미처럼 쌓인 나무와 목재였다. 거센 낙동강 상류의 물살이 나무란 나무를 모두 예안 고을의 들판에 토해 놓은 듯했다.

재난을 정리할 시간이었지만, 이협은 눈에 들어온 나무 더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를 빨리 정리하면, 한몫 톡톡히 잡을 것만 같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여전히 거세기만 한 강물은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강을 건너가 나무를 정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의 노비와 이웃집 노비, 그리고 고을 양인들까지 10여명의 일꾼들을 동원했다. 그러나 홍수 뒷정리를 위해 모인 것으로 알았던 일꾼들은 거센 분천의 물줄기를 보고 아연실색했다.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는 상황임을 알았지만, 쏟아지는 이협의 협박으로 강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분천을 건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공은 당연히 이를 거절했다. 눈에 보이는 이득이 아무리 커도,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협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양반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강을 건너다 빠져 죽을 가능성이 강을 건너지 않고 맞아 죽을 가능성보다 낮다며 협박했다. 결국 사공은 “이렇게 험한 물을 억지로 건너려 하니, 많은 사람들이 죽어도 나는 모르겠다”면서, 협박에 못 이겨 노를 잡았다. 그러나 사공의 예측은 한 치도 틀리지 않았다. 험한 물살에 배는 전복되었고, 물살을 뚫고 헤엄쳐 나온 몇몇을 빼고 10여명이 물살에 쓸려 내려갔다. 욕심이 불러온 대참사였다. 억지로 일을 시킨 이협은 헤엄쳐 살아 나왔지만, 그렇게 대부분의 일꾼들은 목숨을 잃었다.

어쩔 수 없는 재난이라 해도,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면, 그보다 억울한 일도 없다. 하지만 이러한 재난 위에 인재가 겹쳐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오면, 그보다 애통한 일도 없다. 물론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을까 싶기는 하다. 그러나 책임 회피를 위한 권력자들의 말 한마디가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명예를 물길에 밀어넣고, 정치적 이익을 위한 행동이 수해로 다친 국민들의 마음을 죽이는 일은 이미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큰물 건너편에 있는 나무 더미보다 큰물 앞에서 목숨을 걸고 재난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먼저 봐야 하는 이유이다.

이상호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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