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서정시대] 소녀들의 목소리는 우리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나는 핑클과 S.E.S의 노래를 들으며 1990년대 IMF 시절을 버티고 2000년대 초 IT 버블까지 지내왔다. 지금 소녀들의 목소리는 우리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예컨대 뉴진스의 ‘디토’, 아이브의 ‘I am’,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 같은 곡은 뇌의 숲에서 가지를 뻗은 860억 개 신경 나무의 잎사귀를 흔드는 바람이다. 뉴런의 숲에 바람이 불고 그들의 음색이 초콜릿 분말처럼 귓가에 부서지는 순간, 은은한 마법이 시작된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머금는 순간 유년의 기억으로 플래시백 되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법처럼. 그것을 향수라 할까, 환각이라 할까. 듣다 보면 가수의 목소리가 공기 중을 떠다니는 무형의 음원이 아니라, 공간을 전환시키는 주술 형식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귀저리게’ 깨닫는다. 평소 시도 때도 없이 칼군무를 맞추는 K팝 퍼포먼스에 닭살이 돋았던 나는, 매번 다시 시작되는 그들의 해맑은 주술에 몸을 맡긴다.
‘Life is 아름다운 갤럭시
어느 깊은 밤 길을 잃어도 차라리 날아올라. 그럼 니가 지나가는 대로 길이거든
1, 2, 3, 1, 2, 3 fly up~.’(아이브의 ‘I am’ 중에서).
우리는 바람을 볼 수 없지만, 유일하게 송홧가루가 날릴 때만큼은 노랗게 흔들리는 바람의 육체를 볼 수 있다고 이어령 선생은 말했다. 지금 홍차에 적신 ‘바람의 육체’가 내게는 소녀들의 춤이고 노래다. 그만큼 부드러워지기까지, 그만큼 투명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성실함으로 출렁였을까. 피땀 눈물보다 향기 웃음 바람의 템포로 서로를 끌어당기며. 물론 나는 최적 콤비네이션을 보여주었던 2세대 걸그룹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힘과 그루브의 현현인 2NE1이나 마마무, 글로벌 1위 팬덤을 자랑하는 3세대 블랙핑크도 존경한다. 그럼에도 2021년 이후에 나타난 뉴진스, 아이브, 피프티 피프티… 4세대 걸그룹들이 자의식 과잉 없이 이지 리스닝 계열의 노래를 부를 때 온몸에 일어나는 그 잔물결을 더욱 사랑했다. 리듬을 보듬는 우아함, 드넓은 플로의 세계. 그 누구와도 척지지 않고, 어떤 세대도 가르지 않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절친’이 되어왔던 그 무수한 화해의 순간들을. 절도 넘치는 칼군무나 센 언니의 압도감 없이, 기분 좋게 낯선 세계를 보듬는 그 따스한 루즈함이라니!
그것이 허밍과 비음 사이를 파고든 자연스러운 보컬의 매력인지 복고 팝 같은 사운드의 마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경우든 이 소녀들은 태어나서 진짜로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왜 태어난 걸까?’
애초에 우리의 탄생 설화엔 어떤 의심이나 히스테리는 없었다는 듯. ‘태어나지 않은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지구에 눈송이처럼 몸을 던진다 해도 ‘나로 태어나고 싶다’고, 내가 언제나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내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그들은 속삭인다. 내가 태어난 건 나만의 세계관으로 ‘넘사벽’ 제국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지 화면을 흔드는 가벼운 웨이브처럼 나의 이야기 속으로 네가 ‘놀러 와’ 섞이고 확장되길 원할 뿐이라고.
그래서 때때로 혀 안에 고성능 앰프를 박은 듯 가볍게 도약해버리는 소녀 친구들을 볼 때마다, 김연수의 소설 ‘세계의 끝 여자 친구’나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이 주는 엑시트(Exit)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세계의 끝이 여자 친구라면, 그 바깥이 여름이라면, 그 우주는 소녀의 탄식과 허밍으로 충만한 곳이겠지. 그렇게 지금의 소녀 안에 과거의 소녀가, 과거의 소녀 안에 미래 소녀가 함께 숨 쉬는 이 생생한 ‘플로’의 바탕엔 무엇이 있을까.
고난을 겪어도 파괴되지 않는 소녀의 위력에 경의를 표한 사람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괴물’의 현서, ‘설국열차’의 요나에 이어 ‘옥자’의 미자로 이어지는 봉준호의 소녀 사랑의 연대기에는 ‘세계의 구원자’를 향한 변함없는 믿음이 자리한다. 김보라 감독의 영화 ‘벌새’는 폭력과 환희, 슬픔의 순간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던 소녀가 자라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다. “삶은 아름다운 거야”를 보여주는 어른 한 사람만 있어도 10대의 마음은 이토록 정확하게 자란다고.
얼마 전 불볕더위가 무쇠솥처럼 끓던 날. 나는 열세 살 딸아이와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 채, 차 안이 떠나가도록 볼륨을 높이고 뉴진스의 ‘디토’를 불렀다.
‘길었던 하루, 따따따… 울린 심장.’
바깥은 여름이었고, 나는 세계의 끝 여자 친구와의 시간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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