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자축구의 ‘전설’이 쏘아 올린 성평등 향한 작은 공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은 1991년 시작됐다. 9회째인 이번 대회는 20일부터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다. FIFA는 이번 대회 총상금을 2019년 프랑스 대회 때 5000만달러에서 1억5200만달러로 세 배 이상 올렸다. 물론 ‘2022 카타르 남자월드컵’ 상금인 4억4000만달러에 비하면 30%도 안 되는 수준이다.
FIFA 성과급 규모가 성별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은 2015년 여자월드컵에서 미국을 우승으로 이끈 메건 라피노 등 5명이 미국 축구협회를 ‘임금 차별’을 이유로 양성평등고용위원회에 고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미국 여자대표팀은 2015년 캐나다 여자월드컵 우승으로 200만달러 상금을 받았다. 반면 미국 남자대표팀은 2014년 브라질 남자월드컵에서 15위에 그치고도 800만달러를 챙겼다. 협회가 주는 연봉과 수당도 성별에 따라 큰 차이가 났다. 2014년 미국 여자대표팀 최고 연봉자는 7만2000달러를 받았지만 남자 대표선수 4명은 40만달러 이상을 챙겼다.
협회 입장은 단호했다. 남자팀은 방송중계권, 스폰서십, 입장권 판매 등 여자팀에 비해 현저히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연봉·보너스·수당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협회는 차등 보상에 대한 당위성을 주장하며 여자 선수들을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여자팀은 2019년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 또다시 우승하면서 임금 차별에 대해 더 강력한 목소리를 냈다. 라피노 등 28명은 2019년 월드컵이 끝난 지 3일 뒤 협회를 LA법원에 고소했다. 소송을 제기한 날은 국제여성의날이었다. 이들은 “여자 선수들이 남자팀에 비해 훨씬 더 적은 연봉을 받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불평등한 보상체계는 차후에 심각한 차별을 초래한다” “훈련 예산, 전용기 사용, 경기 날짜와 시간 등 외적 처우에서 남자팀과 등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0년 5월 법원은 협회가 여자팀 선수들에게 2400만달러를 배상하고 앞으로 여자 선수들이 차별 대우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서약하라고 판결했다. 원고들은 소송의 핵심인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곧바로 항소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여자대표팀 주장으로 2019년 FIFA 베스트 여자 선수상과 골든볼을 수상한 라피노는 여성 활동가 및 리더로서 새로운 역량을 보였다.
라피노는 뉴욕 시청에서 열린 2019년 월드컵 우승 기념 환영 만찬에서 인종 차별, 성평등에 대해 역설했다. 라피노는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 의장과 찰스 슈머 상원 의원 초청을 받아 국회의사당도 방문했고, 2021년 3월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만났다. 그는 언제, 어디에서든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주장했다.
라피노의 헌신과 노력이 빛을 발했다. 미국 축구협회와 여자대표팀은 지난해 5월 상호 제기한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성별에 관계없이 동일한 연봉·보너스·수당은 물론 동등한 대우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단체교섭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FIFA 상금은 통합 관리되고 남녀에게 균일하게 배분된다. 협회는 2022년 카타르 남자월드컵과 2023년 여자월드컵 총상금을 합한 금액 중 90%를 남녀대표팀에 절반씩 주기로 했다. 여자축구대표팀 존재감이 강한 노르웨이, 호주, 네덜란드 축구협회도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에 근거해 남녀대표들에게 같은 수당과 보너스를 제공하지만 남녀대표팀이 각각 따로 받는 FIFA 월드컵 상금을 통합해 관리하지는 않는다.
지난 10여년 동안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 철폐를 위해 싸운 라피노는 올해를 끝으로 은퇴한다. 이번 월드컵이 개인으로 네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이다. 라피노는 38세로 팀내 최고령이다. A매치 기록은 199경기 출전에 63골이다.
박성배 한양대 스포츠매니지먼트 전공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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