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폭우 덮친 농가… 상추·시금치 70% 넘게 폭등
19일 충남 논산 양촌면에 있는 한 비닐하우스. 며칠간 퍼붓던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했지만 비닐하우스 안 상추는 잎이 늘어지고 말라비틀어진 상태였다. 상추 주 산지인 논산에도 폭우가 쏟아지면서 상추가 흙탕물에 잠겨버린 탓이다. 물 빠진 비닐하우스에는 진흙과 말라비틀어진 상추만 뒤엉켜 있었다. 양촌면에서 상추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이전에 비가 많이 와도 침수 피해는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속수무책이었다”며 “폭염 탓에 상추가 크지 않더니 비까지 퍼부어 농사 다 망쳤다”고 했다. 논산 양촌농협에 따르면 이곳에서 상추 농사를 짓는 120여 가구 중 60% 이상이 이번 집중호우로 침수 피해를 당했다.
폭염에 이은 폭우에 농작물 침수, 낙과(落果) 피해가 잇따르면서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잎이 연한 상추, 시금치 등 엽채소와 과일 가격까지 치솟으면서 여름휴가철은 물론, 9월 추석 물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공공요금, 공산품, 가공식품 가격이 잇따라 오르는 상황에 농산물 가격까지 뛰면서 물가 부담이 한층 커지게 됐다.
◇한 달 새 70% 넘게 오른 상추·시금치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비로 농작물 침수나 낙과 피해를 당한 지역은 19일 기준 3만3004ha다. 여의도 면적의 114배 수준이다. 축사나 비닐하우스 같은 농업 시설이 파손된 지역은 52ha에 이른다. 경기도 이천에서 대파 농사를 짓는 농민은 “비 때문에 대파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충남 농협 관계자는 “비가 그쳐도 땅이 무르면 금세 무름병이 돌기 때문에 새로 작물을 심어도 제대로 된 상품을 키우기 어렵다”고 말했다. 가축도 79만7000마리가 폐사해 농산물은 물론, 소고기·돼지고기 같은 축산물 공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한다.
농산물 공급 부족은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청상추 100g의 소매 가격은 한 달 전 1080원에서 지난 18일 1897원으로 75.6% 올랐다. 일주일 전(1635원)과 비교해도 16% 비싸졌다. 여름휴가철 수요가 많아지는 쌈채소도 가격이 오르면서 “삼겹살에 상추쌈 먹기도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시금치(100g)는 1547원으로 한 달 전보다 77.6%, 열무(1kg)는 3713원으로 61.4% 올랐다. 미나리(100g)도 한 달 사이에 13.3% 뛰었다. 농민들은 “그나마 지금은 수확해 창고에 저장해 둔 물량이 일부 공급되고 있어 나은 편”이라며 “일주일 정도 지나면 공급 부족이 심해져 가격은 더 뛸 것”이라고 말했다.
◇추석 물가도 영향 미칠까
폭우에 과일 가격도 가파르게 뛰고 있다. 경북 영천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복숭아나무 120주 중 80주가 비 피해를 당해 정상 복숭아 비율이 20~30%밖에 되지 않는다”며 “남은 복숭아도 물을 먹어 상품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번 폭우로 낙과 피해 농지만 110ha다. 18일 복숭아(10개) 소매 가격은 2만5184원으로 평년(1만8300원)보다 38% 올랐다. 여름 과일인 수박(1개)은 평년보다 16.3%, 거봉 포도(2kg)는 83%, 토마토는 46.8%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번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는 추석 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애초 올해 과일 수확량이 적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수확을 앞두고 폭우까지 겹치며 공급은 더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사과는 17.3%, 배는 21.1%, 복숭아는 10.2%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집중호우로 낙과 피해가 커지고, 일조량 부족 등으로 당도가 낮아져 상품성이 떨어지는 과일이 증가하면 시장에 공급되는 과일은 더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8월 이후 태풍까지 겹칠 경우 농작물 피해는 더 커질 수도 있다.
대체로 외식 품목은 농축수산물 가격에 연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농축수산물 가격 인상은 외식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비 피해로 인상된 농산물 가격이 전반적인 물가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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