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영아 249명 목숨의 무게
보건복지부는 18일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사라진 아기’ 2123명 중 249명이 사망했다는 전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날 온갖 뉴스를 도배한 건 수해로 전국에서 4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수해로 인한 사상자 발생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다만 숫자로만 보면 숨진 아기 숫자가 6배 더 많았다. 속을 뜯어보면 더 충격적이다. 출생 미등록 아기 2123명의 사망률은 현재 기준으로도 11.7%다. 2021년 영아 사망률(0.24%)보다 50배나 높은 수치다. 생사 확인이 안 된 나머지 817명 아이들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사망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영아 249명 사망’이란 숫자에 이상하리만치 무덤덤하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편견 때문일까. 한국은 아직도 영아를 부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핏덩이’ 혹은 ‘소유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오래된 얘기다. 한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기가 태어나면 1~2년 뒤에 출생 신고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기 1000명이 태어나면 40~50명은 1년 내 장티푸스 등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핏덩이가 사람이 되면 호적에 올린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인식은 국가의 법·정책에도 스며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형법의 영아살해죄였다. 영아를 살해했을 경우 일반 살인죄보다 가볍게 처벌하도록 한 조항이다. 아기와 성인의 목숨을 달리 취급하는 전근대적 법 조항이란 비판이 많았지만, 1953년 만들어진 뒤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이번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70년 만에 부랴부랴 폐지됐다.
249명의 아기들이 숨진 시기는 2015년부터 작년까지다. 범죄 등에 휘말려 1년에 31명꼴로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는데 어느 정부 기관도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정부는 병원이 출생 사실을 정부에 의무적으로 통보하게 하는 출생통보제가 그간 도입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고 있다.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이미 각 병원이 분만 진료비를 청구할 때 제출한 신생아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려고만 했다면 아기가 출생신고가 됐는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직접적 원인이었지만, 그 복지부동이란 ‘이끼’를 만든 축축한 환경은 ‘영아는 성인과 다르다’는 우리 사회 인식이었다.
사회가 힘없는 영아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 미국·독일·영국 등 주요 국들은 병원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담당 공무원이 직접 현장을 찾아 아이를 확인하고 직권으로 출생 등록을 한다. 아이도 성인과 똑 같은 인격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아 249명 사망 소식에도 잠잠한 한국. 성인도 아이도 목숨 무게는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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