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 여섯 번째 대멸종 ‘인섹타겟돈’
지난 6월 말 ‘러브버그(사랑벌레)’가 집에 들어왔다. 방충망에 문제가 있나 싶어 창 아래쪽을 살펴보던 중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았다.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만 같은 기분. 나는 눈을 돌려 오른쪽 벽을 쳐다보았다. 하얀 벽지에 러브버그들이 붙어 있었다. 그 행렬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천장에 이르렀을 때, 형광등 옆에 모여 있는 수십 마리의 러브버그들이 보였다.
새벽 두시였지만 바로 튀어나가 편의점으로 갔다. 가정용 살충제를 사기 위해서였다. 이미 복도에도, 엘리베이터에도, 편의점 문에도 러브버그가 있었다. 각종 SF영화에서 보았던 ‘곤충의 역습’이 떠올랐다.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에 사로잡혀 한 통 남아 있던 살충제를 사서 돌아왔다. 고양이가 있는 집에서 살충제를 함부로 뿌릴 수 없다는 생각이 떠오른 건 그때가 되어서였다. 나는 “해충은 아니라잖아”라고 중얼거리며 검색을 시작했다. 러브버그는 익충이고, 입이 퇴화해 사람을 물지 않으며, 3~5일 정도 짝짓기를 한 뒤엔 곧 짧은 생을 마감한다는 정보, 익충을 과하게 방제하면 생물 다양성을 해치게 되고 결국 해충의 대발생을 초래하게 될 거라는 경고를 잔뜩 보고 나서야 조금 안정이 되었다. 러브버그가 속한 털파릿과의 학명이 ‘비바이오니디(bibionidae)’라는 것까지 배웠다.
결국 러브버그와의 짧은 동거를 결심하고 침대에 누웠다. 실제로 그날 밤 자는 나를 괴롭힌 건 수십 마리의 러브버그가 아니라 한 마리의 모기였다. 다음날 아침, 천장에 붙어 있던 러브버그들은 모두 창가로 가 죽어 있었다. 밖이 껌껌할 땐 형광등 불빛으로 몰려들었다가 해가 뜨니 창가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러브버그 사태는 잠잠해졌다.
다시 러브버그를 생각하게 된 건 기후위기 사전 <기후 책>을 읽을 때였다. ‘곤충’ 항목을 제일 먼저 펼쳤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곤충들이 얼마나 극성을 부리며 인간을 괴롭히는지 궁금했다. 올해는 ‘동양날파리’ 같은 해충의 등장으로 내내 시끄러웠고, 그게 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진단을 접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필자는 최근 곤충의 종 수와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면서 “더 높아진 기온과 늘어난 강수량은 모기 같은 일부 곤충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부분의 곤충에게는 오히려 위험하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곤충이 골칫거리가 된 줄로만 알았지, 그들 역시 인간이 초래한 기후위기에 함께 휘말리고 있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인섹타겟돈.’ ‘Insect(곤충)’와 ‘Armageddon(종말이 초래할 혼란)’의 합성어다. 이 말을 만든 올리브 밀번은 지구에 닥쳐올 여섯 번째 대멸종은 곤충의 멸종에 따른 연쇄적인 생태계 붕괴일 거라 경고한다. 곤충을 위협하는 건 기후위기만은 아니다. 도시화와 산업화는 곤충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과도한 농약 사용은 해충의 농약 저항성을 발달시키는 동시에 벌류와 나비류를 비롯한 많은 곤충의 감소를 유발하고 있다. 게다가 세계화는 외래종의 침입을 가속화시켜 토착종을 위협한다.
곤충이 사라지면 곤충을 먹이로 삼는 작은 동물이 죽기 시작하고, 썩어야 할 것들은 썩지 못하며, 식물이 번식하지 못해 식량위기가 닥쳐온다. 먹이사슬의 최고점에 있는 인간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인간의 SF적 상상력은 ‘곤충의 역습’이 아니라 지구 생명 종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는 곤충의 멸종을 두려워해야 했던 건 아닐까.
관대하게 러브버그와의 동거를 결심했던 그날 밤, 나는 모기의 멸종을 기도했다. 실제로도 한 마리의 모기를 기꺼이 처단했다. 좀모기과가 카카오꽃의 유일한 수분자이기 때문에 모기가 사라지면 초콜릿이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이후였다. 무언가와 쉽게 전쟁을 벌이며 승리를 꿈꾸지 말지어다, 인간.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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