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극장과 재해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2023. 7. 2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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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최초의 극장으로 불리는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최초의 극장 재해기록도 가지고 있다. 목조 계단식 객석이 서기전 499년에 붕괴된 것이다. 현재의 석조 객석은 그 후에 지어졌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다수 초연돼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극장의 하나가 된 런던의 '더 글로브'는 완공 15년 후 1613년 '헨리8세' 공연 도중 발생한 화재로 전소됐다. 그 외에도 수많은 역사적 극장이 재해로 무너지고 다시 지어지곤 했다.

한국에서도 여러 극장이 재해를 입었다. 1902년 10월 대한제국 근대화 계획의 일환으로 지어진 한국 최초의 극장 '협률사 희대'는 1914년 의문의 화재로 소실됐다. 1907년 민간에 임대된 후 '원각사'로 이름을 바꾼 이 극장의 화재를 두고 일제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방화라는 추측이 있었지만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 후 서울과 각 지역에 여러 극장이 지어졌다. 이 중 유난히 시민들의 주목을 끈 한 극장이 있다. 1922년 11월 극장주 황원균에 의해 인사동에 건축된 '조선극장'이 그것이다. 조선극장은 조선인을 주 관객으로 조선연극을 주로 공연하는 극장이며 1923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어원이 된) 연극단체 토월회의 제1회 공연이 상연된 극장이다.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조선극장은 당시 한국 최고의 현대식 시설을 자랑했으나 1936년 6월 '암흑가의 총공격대'라는 영화를 상영하던 도중 발생한 화재로 관객들의 아비규환 속에 불에 타 사라졌다. 화인은 화장실에서 피운 담뱃불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복 후 소극장 없는 소극장운동에 공연계가 아쉬워하던 차에 국악과 연극을 좋아하던 공보실장 오재경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정부수립 10주년을 맞아 을지로2가 4번지에 있던 헌병사령부 건물을 개조해 1958년 12월 306석 규모의 소극장을 만들고 '원각사'라고 명명했다. 1914년 소실된 원각사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다. 가뭄 끝의 단비 같던 원각사는 당시 공연계의 사랑을 독차지했으나 1960년 12월 불의의 화재로 불과 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화인은 무대 뒤 배전반에서 발생한 누전으로 밝혀졌다. 당시 화재현장을 찍은 사진에서 원각사의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1961년 11월 광화문에 3003석 규모의 초대형 공연장이 생겼다. 당시 대통령 이승만의 호를 따 '우남회관'으로 계획했다가 독재에 항거한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쫓겨나면서 개관 시 '서울시민회관'으로 이름지어진 이 회관은 11년 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972년 12월 문화방송 개국 11주년 기념 '10대가수 청백전' 공연이 끝날 무렵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시민회관 대강당 무대에 설치된 조명장치가 터지면서 무대에 불이 붙었다. 51명이 사망하고 76명이 부상을 입은 이 끔찍한 화재는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974년 청량리역 대왕코너 화재와 함께 서울시의 3대 화재사건으로 꼽힌다. 화인은 전기과열로 인한 합선으로 밝혀졌다. 6년 후 1978년 같은 자리에 '세종문화회관'이 완공됐다.

촛불, 등잔불, 가스등으로 조명을 하던 시절의 극장은 화재로부터 무사하기 어려웠다. 19세기 100년간 유럽과 미국 대형 공연장에서 1100건 이상의 화재가 발생했다. 1881년 전기조명이 극장에 도입된 후 화재건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화재를 겪을 때마다 법규가 강화되고 건축, 조명, 소방기술이 발전했다. 그래서 현대의 극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 그러나 사실 서기 79년 폼페이 최후의 날 베수비우스산의 화산쇄설류에 묻혀버린 폼페이 원형극장의 경우를 제외한 거의 모든 극장 재해는 천재가 아닌 인재였다. 요즘 대형 참사가 자주 발생한다. 인간의 불성실로 소중한 생명과 문명의 자산이 헛되이 희생되는 일이 더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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