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 인사이트] 영화관에 갈 결심
영화관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덮친 그늘이 점점 걷히고 있다. 공항은 다시 붐비고, 여행은 모처럼 활기를 띤다. 팬데믹 기간 집합시설로서 소비자에게 외면받았던 영화관도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많은 사람은 이전처럼 북적북적한 영화관을 상상했을 것이다.
2배속 시청에 익숙한 Z세대 외면
하지만 영화관의 수요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2022년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영화관 매출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60.6%(1조1602억원), 관객 수는 49.8%(1억1281만 명) 회복하는 데 그쳤다. 2022년 평균 영화 관람료가 처음으로 1만원을 넘어섰음에도 영화관 매출은 기대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 편이다.
업계 1위 CGV의 2022년 말 부채비율은 816%였다. 경쟁 업체인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두 업체의 모기업 롯데컬처웍스와 메가박스중앙의 부채비율은 각각 3475%, 1138%였다. CGV가 유상증자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코로나19가 끝났는데도 사람들은 왜 영화관에 가지 않을까. 첫째, 직접적 경쟁 매체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팬데믹 기간에 커졌다. 최근 발표된 비씨카드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3년 OTT 이용 고객은 300% 증가했다. 최근 OTT 성장이 둔화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중장년층이 OTT로 빠르게 유입되면서 전체 소비자층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극장 개봉이 아니라 OTT로 영화를 공개하는 일은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둘째, 세대의 변화도 주목해야 한다. Z세대는 학창 시절 인터넷 강의를 2배속으로 들은 세대다. 이들은 드라마,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를 빠른 속도로 시청한다. 이처럼 배속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세대에게 한 장소에 가만히 앉아 2시간 동안 정속으로 영화를 보는 방식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Z세대는 여러 가지 일을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는 데 능숙하다. 유튜브를 보면서 게임을 하고, OTT를 보면서 오픈채팅을 하는 식이다. 문자 메시지 확인이나 상시 채팅이 불가능한 불 꺼진 극장이 달가울 리 없다. 이에 대해 2022년 말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라는 책을 통해 콘텐츠 소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지적한 이나다 도요시는 Z세대에게 영화관에서 영화 보기는 ‘고역’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셋째, 대안이 다양해졌다. 기성세대는 보통 데이트할 때, 친구들끼리 가볍게 시간을 보낼 때 딱히 갈 만한 곳이 없었고, 거의 유일한 대안이 영화관이었다. 하지만 이제 놀거리가 많아졌다. 사진 찍기 좋은 미디어아트 전시회, 각종 핫플이 모여 있는 서울 성수동이나 삼각지 탐방, 독특한 콘셉트의 팝업스토어 등 영화관에서 보내는 두 시간이면 더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넘친다. 같은 시간 대비 즐길 수 있는 경험의 종류와 감도를 시간 가성비로 따져봤을 때 영화관은 효율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영화관, 핫플과도 경쟁할 수 있어야
지난해 ‘헤어질 결심’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은 “영화관에서 집중된 태도로 집중력을 가지고 여러 사람과 함께 동시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쥬라기 공원1’을 첫 영화관 영화로 시작해 ‘쉬리’와 ‘기생충’을 거쳐 한국 영화의 발전을 몸소 경험한 영화관 키즈로서 깊이 공감하는 바다. 아마 영화를 좋아하는, 그리고 좋아했던 많은 사람이 영화관의 부활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드라마, 만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시간을 점유하는 무언가가 ‘콘텐츠’라는 용어로 압축되는 시대다. 다시 말해 영화관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계를 넘어 전시회, 박물관, 핫플, 유명한 카페 등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이 다른 대안을 버리고 영화관에 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물음에 처절하게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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