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조건 없는 대화’에 고장난 계산기 내민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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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한 김여정의 등판이 부쩍 잦아졌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전후로 미군 정찰기 활동을 트집 잡아 세 차례나 나서더니 한미 핵협의그룹(NCG) 첫 회의를 앞두고도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를 비난하는 장황한 담화를 냈다.
북한으로선 1년 반 뒤 미국 대선 때까지 기다리며 도발 일변도의 대외전략을 밀어붙이기엔 한계에 봉착한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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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 미국인 월북’에 무슨 농간을 부릴지
17일 담화에선 은근슬쩍 대화 가능성을 흘리며 미국의 반응을 떠보기도 했다. 김여정은 미국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 제안을 두고 “황당한 망상”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과거 북-미 협상에 올랐던 거래조건들을 새삼 상기시켰다. 미국이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요구할 테지만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전략자산 전개 중단, 제재 완화,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 같은 ‘가역적 공약’과 바꿀 수 없다며 “우리는 밑지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화에 대한 미련을 드러내며 미국을 향해 새로운 계산법을 요구한 셈이다.
북한은 앞서 5월 말 일본을 향해서도 비슷한 신호를 보낸 적이 있다. 일본 측에 전례 없이 군사정찰위성 발사 일정을 통보하더니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조건 없는 만남’ 제안에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외무성 부상 명의의 사뭇 정중한 담화를 냈다. 그즈음 북한은 일본인 납북자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가 북한에서 낳은 딸이 일본의 외할아버지 묘에 자기 이름으로 꽃을 바치고 싶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면서도 교묘한 신호를 보내는 것은 일단 상대의 속내를 떠보면서 한미일 대북 공조에 균열을 내기 위한 상투적 수법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엔 초조감과 조바심이 묻어 있는 게 사실이다. 북한으로선 1년 반 뒤 미국 대선 때까지 기다리며 도발 일변도의 대외전략을 밀어붙이기엔 한계에 봉착한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우선 북한이 크게 기념하는 7·27 정전협정일(전승절) 70주년을 앞두고 야심 차게 추진하던 정찰위성 발사의 실패는 뼈아플 수밖에 없다. 잇달아 미사일을 쏘아 올렸지만 그 대외적 충격 효과나 대내적 결집 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비용도 감당하기에 만만치 않다. 대신 미군 전략자산의 잦은 출몰로 북한군의 긴장도와 피로감은 한층 높아지는 상황이다.
주변 정세도 녹록하지 않다. 그간 신냉전 기류 속에 버팀목이 됐던 중국과 러시아는 제 앞가림에 급급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수렁에 빠져 제 코가 석 자이고, 중국은 최근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며 고위급 대화를 재개했다. 무엇보다 과거 미중 관계의 타협점을 대북 제재 동참에서 찾았던 중국인만큼 경계심을 늦출 수 없게 됐다. 미국이 동북아 깊숙이 작전영역을 확대하는 터에 중국도 마냥 북한을 감싸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정세 변화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움직이며 생존을 연장해온 김정은 정권이다. 도발과 협박을 일삼다가도 일순간 유화 국면으로 돌아서는 태세 전환에 능수능란하다. 더욱이 어떤 계기든 잽싸게 잡아채 ‘지도자 동지의 주동적 조치’라고 선전하기까지 한다. 3대에 걸친 세습 독재를 유지해온 비결일 것이다.
그제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주한미군의 월북 사건이 일어났다. 과거에도 ‘인질 외교’로 단단히 챙겼던 북한이다. 어떻게든 이 사건을 계기로 도발과 유화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며 한미 간 동요를 일으키려 할 것이다. 북한의 뻔한 수작이지만 한국이 빠진 대화라고 해서 못마땅하게 여길 이유는 없다. 그 노림수를 제대로 읽으면서 긴밀하게 공조하면 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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