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알제리계 피살’ 긴장 여전한 佛… 경찰개혁은 속도 못내[글로벌 현장을 가다]
당국은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떨어진 지하철역 인근에서부터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차량 통행을 금지했다. 무장 경찰 십여 명이 곳곳에서 “주의(attention)!”라고 외치며 인파를 통제했다. 경찰차나 구급차가 5분에 한 대꼴로 사이렌 소리를 귀가 찢어질 듯이 내며 지나갔다.》
평소 축제 분위기로 들떴던 바스티유의 날이 올해는 긴장으로 가득했다. 지난달 27일 파리 서부 외곽 도시 낭테르에서 알제리계 17세 청년 나엘의 죽음에 분노한 시위대가 한동안 과격한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제 시위 강도는 약해졌지만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또 다른 시위들이 예고된 상태다.
불꽃놀이 관람을 위해 광장 입장을 기다리던 시민 필리프 소몽 씨는 “경찰들이 이렇게 제대로 통제하지 않았다면 워낙 위험해서 불꽃놀이를 보러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당국이 철저하게 관리해줘서 다행”이라고 했다.
경찰 13만 명 배치
사건 발생 뒤 약 1주일간 프랑스 곳곳에서 폭력 시위가 이어졌다. 이 기간 발생한 시위로 인한 피해 규모는 2005년 이민자 폭동 때 3주간 나타난 피해를 훌쩍 넘어설 정도였다. 결국 나엘의 유족이 2일 시위대에 “폭동을 멈춰 달라”고 호소하고 경찰이 진압에 나서면서 시위 강도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우리도 당했다’며 과거 경찰의 과잉 진압 피해를 폭로하는 추가 시위들이 생겨나면서 불씨가 잦아들지 않는 분위기다.
8일 파리에서는 2016년 역시 경찰에 연행되다 의문사한 당시 24세 흑인 청년 아다마 트라오레를 추모하는 연례 집회가 열렸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는 아다마의 남자 형제 유수프가 경찰 특수부대 ‘브라브엠’에 강제로 제압되고 맨발로 끌려갔다. 이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비백인계 국민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둘러싼 논란 또한 계속되고 있다.
또다시 폭력 시위가 발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당국은 이날 행사장 근처에 경찰을 역대 최대 규모로 배치하며 만반의 준비에 나섰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13, 14일 각각 전국에 경찰 13만 명이 투입됐다.
특히 14일 저녁에만 하루에 4만5000명이 투입돼 인파 통제를 담당했다. 르몽드는 “도심에서 폭력 시위가 재발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전례 없는 보안 조치가 발표됐다”고 평했다.
당국은 헬리콥터, 무인기(드론), 헌병대 장갑차, 물대포 등도 동원했다. 주요 도시에선 오후 10시 이후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운행을 중단시켰다.
“폭죽 금지”에 밀수 성행
당국은 폭죽이 폭력 시위의 도구로 쓰이지 않도록 일찍이 당국의 공식적인 행사 외에는 사용을 금했다. 정부가 폭죽 유통을 막아버리자 체코, 폴란드에서 독일을 경유해 폭죽을 들여오는 밀수 조직도 생겨났다.
한 고위 경찰관은 일간 르피가로에 “폭동 기간에 폭죽 재고를 소진한 범죄자들이 박격포와 폭죽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밀수꾼들이 폭죽을 해외에서 들여오며 건당 2000유로(약 280만 원)를 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이 이렇듯 대대적인 통제에 나섰기 때문인지 이날 시위는 다행히 비교적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내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혁명기념일에는 경찰관, 헌병대, 소방관 등 총 21명의 공무원이 다쳤다. 올해는 3분의 1 수준인 7명만 다쳤다고 BFM-TV가 보도했다. 경찰관 공격에 사용된 폭죽 또한 지난해 333건이었지만 올해는 51건으로 대폭 감소했다.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장관은 트위터에 “2022년에 비해 사고가 크게 감소한 덕에 축제, 콘서트, 불꽃놀이가 프랑스 전역에서 잘 열릴 수 있었다”며 “경찰이 존재하고 이들이 예방 점검을 많이 한 덕분”이라고 경찰을 추켜세웠다.
경찰개혁 쉽지 않은 마크롱
바스티유의 날은 별 사고 없이 지나갔지만 나엘의 사망이 촉발한 경찰개혁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미국과 영국은 과거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계기로 경찰 권력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정권은 경찰의 과잉 진압과 인종차별을 막는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전까진 경찰개혁의 필요성을 수차례 밝혔다. 당시 온라인 매체 ‘미디어파트’와의 인터뷰에서는 “경찰의 문화, 관리, 모집 방식 등을 바꾸고 싶다”고도 했다.
르몽드 등 현지 언론은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 유류세 인상에 발발해 전국 곳곳에서 발생한 소위 ‘노란 조끼’ 시위 이후 경찰개혁을 추진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하는 반(反)정부 시위대를 경찰이 적극 진압해주고 있는데, 이런 경찰을 압박하는 조치를 취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2020년 말 흑인 음악 프로듀서 미셸 제클러가 경찰에게 구타를 당했을 때도 이런 기류가 감지됐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경찰의 폭력 행동은 인정하면서도 “프랑스인과 프랑스인을 보호하는 사람들(경찰) 사이에 존재해야 하는 신뢰를 회복하고 싶다”며 은근슬쩍 개혁 논의를 피했다.
마크롱 정권은 올해 초부터는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한 연금개혁까지 추진하며 여론과 반대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과도 척을 지기는 쉽지 않은 상태다. 파리 외곽 도시 그리니를 이끌고 있는 필리프 리오 시장도 공영방송 프랑스앵포에 “마크롱 정권이 경찰개혁에서 눈에 띄는 발전을 보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경찰 노조 또한 강경 성향으로 유명한 집단이라 마크롱 정권의 경찰개혁에 순순히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 노조는 나엘의 죽음에 반발한 폭력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현 시위를 “폭력적인 소수자들의 독재”라고 칭했다. 또 시위대의 진정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강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위대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경찰에 우호적인 여론 또한 적지 않다. 여론조사회사 ‘이포프’에 따르면 3일 기준 응답자의 57%가 경찰에 긍정적 의견을 밝혔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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