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

2023. 7. 1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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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팔구 영희씨는 이혼했으리라 생각했다.

냉소로 기억되는 영희씨가 어떻게 10년을 버티고 살았을까? 어떻게 귀화까지 생각하게 된 걸까? 어떻게 모의 면접관을 겨냥해서 '대한민국 티셔츠'를 입을 적극성까지 갖게 됐을까? 자신이 그때 그 며느리이고 남편도 그때 그 사람이라며 농담까지 하게 됐을까? 시어머니가 큰애를 잘 키워줘서 뒤늦게 둘째 낳을 생각도 하게 됐다니! 의문투성이였으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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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중팔구 영희씨는 이혼했으리라 생각했다. 아이도 없고 귀화도 안 했으니 이혼하고 자국으로 돌아갔으리라 생각했다. 영희씨가 10년 만에 나타났다. 대한민국이 새겨진 빨강 티셔츠를 입고 생글거리며 귀화 면접 모의시험을 보러왔다. 인상이 너무 달라져서 긴가민가했다.
영희씨가 기억에 남아 있던 건 시어머니를 향한 영희씨의 싸늘한 눈빛과 눈빛만큼이나 강렬했던 시어머니의 목소리 때문이다. 청소년 차림새의 며느리에 대한 불안이 거칠게 쏟아질수록 영희씨의 표정은 식어 갔고 옆에 앉은 남편은 기척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결혼과 가족생활에 대한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시어머니의 정체성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세상이 바뀌었고, 한국 며느리에게도 요구하지 못할 것들을 왜 외국 며느리에게 기대하시냐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새털만큼의 균열도 내지 못했다. 낭패감이 들었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몇 년 후 오르한 파무크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읽다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평면의 구도로도 모든 것을 세밀하게 그릴 수 있었던 400여년 전 터키의 세밀화가들에게 원근으로 표현되는 서양의 초상화는 근본 없는 것이었다. ‘언제나 시작은 눈물로’라고 했던가, 지금은 당연한 서양화가 처음엔 이렇게 엄청난 파고를 겪었구나! 아마 그때 젊은 외국 며느리 영희씨는 나이 든 한국 보수 시어머니에게 서양화처럼 용납될 수 없는 존재였던 것 같다. 내가 어찌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냉소로 기억되는 영희씨가 어떻게 10년을 버티고 살았을까? 어떻게 귀화까지 생각하게 된 걸까? 어떻게 모의 면접관을 겨냥해서 ‘대한민국 티셔츠’를 입을 적극성까지 갖게 됐을까? 자신이 그때 그 며느리이고 남편도 그때 그 사람이라며 농담까지 하게 됐을까? 시어머니가 큰애를 잘 키워줘서 뒤늦게 둘째 낳을 생각도 하게 됐다니! 의문투성이였으나 반가웠다.

누구나 각자 삶의 배경과 경험에서 얻은 각자의 논리로 세상을 살다 보니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다문화가정은 ‘∼카더라’ 하는 편향적 견해까지 보태지고 오해를 풀 수 있는 언어마저 다르니 이방인을 넘어 적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 사람들이 한집에 사는 건 불행일까? 다행일까? 그동안 불행을 못 이겨 이혼하는 사례는 많았고 이렇게 오랜 시간을 견디어 다행으로 바꾸는 사례는 극히 적었다.

아마 한집에 사는 영희씨와 시어머니에게 어느 순간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생기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기지 않았을까? 서로 자신을 성찰하면서 의무와 금기를 조금씩 수정하지 않았을까? 서로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부드러워지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중국 사람 가득한 가리봉 거리를 걸을 때, 앞사람에게 흘러오는 담배 연기,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통화 목소리. 다 마땅찮을 때마다 나도 떠올려 본다. 우리도 안방과 거실에 재떨이가 있던 시대가 있었지. 어떤 사람의 왁자지껄은 생동감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가리봉에도 교양과 에티켓이 찾아오겠지. 아직 시작이지.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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