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철령전과 K방산

2023. 7. 19. 23: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거북선·판옥선 장착
대형 철령전·천자·현자총통 등
왜란 140년 전인 세종 때 개발
위기 선제대비한 K방산의 시작
이달 초 미국 뉴욕을 방문한 차에 메릴랜드주의 아나폴리스에 있는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했다. 1871년 6월11일 강화도에서 벌어진 전투(신미양요)에서 미국 해군이 전리품으로 가져와 해군사관학교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의 화포 불랑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미국 독립기념일(7월4일)과 주말이 겹친 탓에 도서관이 휴관해 불랑기는 보지 못했지만 사관학교 박물관에서 신미양요에 강화도를 방문했던 미국 전함 콜로라도호 관련 자료들은 볼 수 있었다. 남북전쟁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미 해군 전함의 전투력 앞에 전통 무기로 무장한 강화도 진지의 조선해안수비대는 속수무책이었다. 박물관에는 콜로라도호에 승선했던 미국 해군 병사들이 기념 서명한 강화도 부채가 전시되고 있어서 이색적이었다.
미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중인 신미양요 관련자료
우리나라 영토는 비옥한 탓에 옛날부터 침입자가 많았다. 고려 때 왜구 침범에 대한 자료를 보면 1374년부터 1389년까지 16년간 모두 290회였다. 왜구들은 많을 때는 200∼500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전국 해안가의 내륙 깊은 곳까지 침입하여 관가와 민가를 방화하고 양곡을 약탈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왜구의 만행을 무찌르는 방법은 강력한 화약무기를 확보라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화약 제조하는 법을 익힌 최무선은 1377년 정부에 건의하여 화통도감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국산 화포를 연구·개발하였다. 최무선은 화포 개발뿐 아니라 화포를 장착한 전선 설계에도 직접 참여하였다. 고려 말 화포 구조는 총구에서 속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다가 화약이 폭발하는 약통 부근에서 커지는 형태여서 나무화살 형태로 된 것만 발사할 수 있었다. 나무화살의 아래 끝부분을 총구에 삽입하여 화약의 폭발력을 극대화해 발사하는 방식이다. 고려 말엽의 화포(총통)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철 날개를 부착한 대형 나무화살’(철령전·鐵翎箭)을 발사하여 적의 배에 구멍을 뚫어 격침하는 대형 화포이다. 또 하나는 지금의 소총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죽이나 새깃으로 만든 날개를 부착한 나무화살(피령전)을 발사하여 말이나 적을 살상하는 데 사용한 소형 화포이다. 소형 화포는 손으로 들고 적에게 발사할 수 있지만 대형 화포는 전선에 장착하여 사용하므로 발사할 때 생기는 큰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전선을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우천 시에도 화포를 발사할 수 있도록 설계를 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화포를 장착한 첫 군함을 최무선이 설계하게 된 것이다.
철령전(대전)과 장군화통(채연석 복원품)
최무선이 설계한 전선으로 벌인 진포와 관음포 대첩에서 고려군은 화포를 이용하여 크게 승리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지만 자세한 방법은 알 수 없었다. 최무선이 개발한 화기 중에 철령전과 대장군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대장군포로 철령전을 발사하여 적선을 침몰시킴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 방식은 우리 수군이 왜선을 격퇴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되었다.
임진왜란의 해전에서 우리 수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판옥선과 거북선에 대형 함포를 싣고 대형 철령전을 발사하여 적선을 침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거북선은 대형 함포를 싣고 적 장군선 가까이 접근하여 대형 철령전을 발사함으로써 명중률과 파괴력을 높인 것이 해전 승리의 묘수가 된 것이다.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철령전을 발사할 수 있는 대형 총포는 고려 말의 대장군포에서 시작하여 세종 때에는 일총통으로 발전하고 임진왜란 때는 거북선의 용두에 설치한 현자총통이 된다. 그리고 세종 때 개발한 장군화통은 임진왜란에서 지자총통이 되어 조선 말까지 전선과 거북선에서 주포로 사용된다. 세종 때 개발된 총통완구는 임진왜란 때 개발된 천자총통의 핵심 부분인 약통과 격목통 부분이 된다. 대형 총통에서 제일 개발하기 어려운 부분은 많은 양의 화약이 폭발하여 고압이 발생하는 약통 부분이다. 천자총통의 핵심 부분인 약통은 세종 때 이미 개발해 놓았으니 을묘왜변(1555) 이후 판옥선에 탑재할 천자총통을 빠른 시간 안에 수월하게 개발하여 사용할 수 있었다. 판옥선과 거북선에 장착했던 주요 함포인 천자, 지자, 현자총통은 모두 임진왜란 발발 140년 전인 세종 때 미리 개발하여 사용하던 것이다.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국가 위기에 대비하기 위하여 첨단 무기를 미리 연구 개발하고 준비하는 것이 K방산의 시작이었다.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