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인력제, 저임금에 초점 맞추면 안 될 것”
타 직종으로 이탈 우려 크고 ‘전문성’ 찾는 국내 흐름에 역행
부모의 ‘일·육아 양립’ 환경이 자리 잡아야 저출생 대책 효과
2022년 합계출산율 0.59명을 기록한 서울에서 이르면 하반기부터 외국인 가사 인력 제도가 시범 도입된다. 육아 부담을 낮춰 최악의 초저출생 현상을 극복해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격’에 초점을 맞춘 돌봄 정책을 경계했다. 이들은 부모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식이 함께 논의되지 않는 제도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19일 오전 시청 대회의실에서 ‘외국인 가사(육아) 인력 도입 전문가 토론회’를 열고 해외 사례와 예상되는 우려 등에 대해 논의했다. 정부는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상에 ‘가사근로자’를 추가하고 가사근로자법에 따라 공인인증기관을 통한 E-9 비자로 고용·운영하는 방식을 구상 중이다. 이를 통해 서울에 사는 100가구에 시범 도입한 후 확대를 검토한다. 저임금 체계로 입주해 일하는 홍콩·싱가포르 가사도우미 방식보다는 특구로 지정된 지역에 고용돼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출퇴근하는 일본과 비슷한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한국 돌봄노동자 고령화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가사서비스 업체 ‘홈스토리생활’ 이봉재 부대표는 “수요가 급증한 가사서비스는 젊은 세대 유입이 적어 종사자 수가 줄고 평균 연령이 50~60대로 고령화돼 가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합리적 비용이라면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이용할 의향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가사서비스 종사자 규모는 2016년 18만6000명에서 지난해 11만4000명으로 줄었다. 이은희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기획조정본부장은 “국내 아이 돌봄종사자 평균 연령이 중장년이고, 육아 방식 차이로 양육자와 갈등이 빈번한 점을 고려할 때 방문 돌봄 전담 양육 지원자를 반드시 내국인으로 국한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임금 프레임’이 돌봄·가사 노동에 대한 왜곡을 부를 수 있고, 최근 서비스 질을 확보하려는 국내 육아 돌봄시장 흐름에 역행한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현재 홍콩에서 일하는 필리핀인 가사도우미의 노동 강도는 하루 14시간으로 높은 수준이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교수는 “다른 직종에 비해 가사만 임금이 낮으면 외국인 노동자 이탈 위험이 커져 관리 감독 강화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올해 홍콩 가사도우미 최저임금은 월 4730홍콩달러(약 44만원)다. 하지만 여기에 식사보조금 1196홍콩달러(약 19만5000원)와 비자·의료보험·고용허가 관련 수수료, 24개월 이상 계속 고용 시 퇴직금(5년 이상은 장기근속수당 추가), 연 1회 본국 왕복 항공권 등도 고용주가 부담해야 한다.김아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시간제 중심인 국내 아이 돌봄시장은 민간 플랫폼 활성화로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저렴한 가격’에 초점을 맞춰 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현찬 서울연구원 양육행복도시연구그룹장은 “국내 가사근로자법 시행과 민간 아이돌보미 자격증 제도 도입 등으로 가사육아 노동 임금과 처우가 개선되면 국내 인력 유입이 늘어날 수 있어 내국인 보호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언어·문화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이 폐쇄적 공간에서 일하는 데 따른 노동자 보호 방안도 우선 마련해야 하는 부분이다. 서울연구원 측은 “계약 관계, 근무 내용, 근무 장소가 사적인 가사노동은 인권침해 문제가 공통으로 지적돼 국내 제도와 문화에 적합한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싱가포르에선 가사도우미에 대한 주기적 임신 테스트, 시민·영주권자와의 결혼 금지 등의 노동 조건을 둘러싸고 인권침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출생 대책으로 추진되는 해당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병행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김아름 연구위원은 “저출생 대책을 단순히 ‘누군가가 아이를 봐주는 것’ 내지 ‘저임금’에 초점을 맞춘다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며 “부모의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한 욕구가 커 이에 대한 고려가 가장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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