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엘리엇에 손배 책임 가능성 커…이재용·박근혜에 구상권 청구해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1300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의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문을 분석한 전문가들이 “정부가 제기한 주장이 전부 기각됐다”며 “대부분 패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초 청구금액 대비 손해배상금이 7%에 불과하니 ‘93% 승소’라는 정부 주장은 과장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ISDS도 한국 사법부와 마찬가지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승계를 위해 박근혜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법적으로 관여한 사실을 인정했다며 이 회장 등에게 엘리엇 배상금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공적연금강화행동 등은 19일 서울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삼성 불법합병과 엘리엇 손해배상, 정부와 국민연금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좌담회를 개최하고 이같이 밝혔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는 “법무부가 제기한 주장들은 전부 기각됐으며 손해배상 산정액 일부만 인용됐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 20일 ISDS 판정이 나온 직후 엘리엇의 최초 청구금액 7억7000만달러 대비 손해배상금이 7%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93% 승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통상 ISDS를 신청할 때 손해배상액을 크게 부풀려 제기한다”며 “청구액 대비 실제 7%만 인용됐다면서 승소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정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을 두고도 “한국 정부가 손해배상 책임을 물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며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중재판정부가 판정문에서 주요하게 인용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의 삼성 합병 관련 직권남용 유죄 확정 판결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건은 정부와 삼성물산, 국민연금 세 그룹이 불법을 저지른 사건으로 민형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 묶인다”며 “불법에 가담한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했다.
중재판정부의 이번 판정이 서울중앙지법이 심리 중인 이재용 회장의 ‘불법승계 의혹’ 1심 재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김종보 변호사는 “이 회장 1심 재판부가 재판 과정에서 ISDS 판정문을 고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안다”며 “재판부 입장에서도 ISDS 판정문이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삼성물산 주주들에 대한 피해보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지난 5월 복지부는 ISDS 판단이 확정된 이후에 이 회장이나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등 책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제기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며 “국민연금은 지금이라도 대법원으로부터 직권남용 혐의가 확정된 문 전 장관 등을 상대로 손해 부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김종보 변호사도 “정부는 취소 소송 결과가 나오기에 앞서 이 회장 재산 일부를 보전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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